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 (父母恩重) - 흰뼈 검은뼈
<북지장사- 대구 동구>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어느날 석가모니가 제자들과 길을 가다 흩어진 뼈 무더기를 발견하고 정중히 업드려 절하는 그림이다.
석가모니는 보잘것없는 뼈무더기에 예를 갖춘후 제자들에게 인연(因緣)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흔히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인연’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인연이란 말은 좋은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인연은 좋고 나쁨의 관계는 없다.
좋은 만남도 인연이며 나쁨 만남도 인연이기 때문이다.
인(因)은 원인을 말하며, 연(緣)은 원인에 따라 가는 것이니. 즉, 인이 씨앗이라면 연은 밭이다.
그러므로 '인'만 있어서는 결과가 있을 수 없으며, '연'만 있어서도 그 결실은 없는 것이다.
▮ 참으로 소중한 인연
사람은 제 혼자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그렇다고 땅에서 쑥 솟아난 것도 아니라 했다.
그러면 나는 어디서 왔을까?
사람은 자기의 업을 씨줄로 부모를 날줄로 하여 나서, 이 세상의 모든 것 들과 서로 인연지어지면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 졌다고 했다.
말하자면 한 알의 씨앗이 밭의 매체에 뭍혀 있다가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아가면서 조금씩 생장하듯
우리도 부모님을 매체로 이 세상에 태어나, 주위 사람들과 인연지어 가면서 살아온 것이 지금의 나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마음으로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기보다는 도리어 부모를 원망하고 저주하기도 한다.
못난 부모를 두었다는 사람은 부모덕을 못 받았다 하며 제 처지를 한탄하고
잘난 부모를 두었다는 사람은 부모의 그늘에 가리어 주눅 들었다며 제 처지를 한탄한다,
나의 근본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석가모니는 스스로를 해골더미에 절하고 있다.
만일 사람의 생이 지금 한번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라. 불교의 가르침대로 다생겁(多生劫)으로 윤회한다면
모든 중생이 나의 부모요 나의 형제 아니라고 그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저 해골이 그 어느 전날에 나와 인연 맺어진 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지금 이 뼈는 나의 그 옛날 나의 아버지의 뼈 일수도, 어머니의 뼈 일수도, 어쩌면 나와 인연 맺어졌던 이들의 뼈라고. 말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참으로 소중한 인연이다.
‘부모은중’은 우리 모두는 서로서로 인더라망 그물처럼 엮여진 인연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 연기
연기란 인생이 서로 그물처럼 엮여진 인연이기에 일어난다고 했다. 연기란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 생겨나 원인과 조건이 없어지면 소멸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此滅故彼滅)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은 ‘연기법’이라 할 수 있다. 불교 교리가 한없이 복잡한 듯하지만,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연기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다. 결국 연기법이란 존재의 ‘생성과 소멸의 관계성(關係性)’을 뜻하는 것인데.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서 항상 서로 의지하여 관계를 맺고 있어,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어, 서로는 서로에게 원인이 되기도 하고 조건이 되기도 하면서 함께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즉 모든 존재는 전적으로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요컨대 연기법은 “모든 괴로움은 절대적.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연기되어 있으므로, 그 조건과 원인을 파악하여 괴로움을 극복하라."라는 메시지를 함께 전해주고 있으며, 그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인간 스스로의 ‘진리에 대한 무지[無明]’이며 ‘끝없이 타오르는 욕망의 불꽃[貪愛]’임을 밝혀주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어진다.
▮ 모아보는 부모은중
<고운사-경북 의성>
<보광사-전남 담양>
<성주사-경남 창원>
<직지사-경북 김천>
<청량사-경북 영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