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 - 벼랑 끝에 올라선 아난존자
평생을 부처님의 옆에서 시봉하셨던 아난존자는 원래 부처님의 사촌동생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고향 카필라성으로 돌아와 법문을 하셨을 때, 다른 석가족의 친척들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순간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습니다. 때문에 부처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항상 그 옆에 서있었던 분이 아난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난존자의 기억력은 남달랐습니다.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시면 그대로 외워버릴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난존자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아픔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열반 순간에 '이제 저희는 누구를 의지합니까?'라며 눈물로 여쭈었던 심정은 그런 후회와 절망의 표현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이제 부처님게서 생전에 하셨던 수 많은 법문을 정리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같은 내용을 두고도 제자들의 이해도와 그 때의 상황에 따라 방편으로서 각각 다르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저마다 들은 바 내용이 달랐던 탓에 혼선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모두가 인정할 만한 가장 뛰어난 분들이 모여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을 결집結集이라고 합니다. 훗날 이 결집은 수 차례에 걸쳐 이뤄졌기에, 이 때의 모임을 '제1차 결집'이라 부르는데, 이 모임에는 500명의 아라한이 참가했습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면 누구보다 가장 많이 들었던 아난존자는 아직 아라한이 되지 못했던 이유로, 즉 깨달은 성인이 아니었기에 결집에는 참석할 자격이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아난의 입장에서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만큼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이대로라면 부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결집을 주도했던 장로 가섭존자도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아난에게 7일간의 말미를 주었습니다. 만약 일주일 안에 깨달음을 얻으면 결집에 참가해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난존자는 벼랑 끝에선 심정으로 절벽 위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두 발꿈치를 세워든 채 꼼짝도 않고 수행했습니다. 조금만 졸았다가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죽을 각오로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로부터 7일째 된 날, 아난존자는 드디어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집이 열리는 칠엽굴로 갔습니다. 칠엽굴에는 외부의 출입을 철저히 막기 위해 굴의 입구를 커다란 바위로 막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도를 깨친 아난존자는 신통력으로 바위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광경를 목격한 스님들은 아난존자의 깨달음을 인정하고, 결집에 참가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 결집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앞으로 스님들이 지켜야할 계율에 대해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십대 제자 가운데 지계제일持戒第一우바리존자가 계율을 읊자, 모였던 스님들이 합송으로 따라 읊었고, 부처님의 말씀은 아난존자가 대표로 외우자 모든 스님들이 따라서 읊으면서 드디어 제1차 결집이 시작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