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한산과 습득 (寒山과拾得)
<오어사원효암- 경북포항>
누더기 차림의 두 남자가 크게 웃고 있는 그림이다.
서로 절친한 친구 사이인 두 남자, 한 남자는 그가 살고 있는 동네이름을 따서 한산(寒山)이라 부르며, 다른 한명은 버려진 아이를 절에서 주워 길렀다하여 습득(拾得)이라 불렀다.
한산과 습득은 사찰벽화 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이야기로 그려지는데 한편의 코미디프로 ‘웃찻사’를 보는 듯한 두 남자들의 엉뚱한 사건의 연속이지만, 이들 이야기를 가볍게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엉뚱한 사건을 통해 깊은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선시(禪詩)’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그들의 이야기에서는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엿보게 된다.
▮ 한산이 습득에게 물었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모욕하고, 무시하여서 나를 엄청 화나게 한다면 나는 그때 당장 어떻게 해야 할까?”
습득이 답했다.
“그들이 주는 모욕에 바로 신경 쓰지 말고, 100년 뒤 그들 모습 상상 해 볼까나.”
습득은 한산에게 주는 답에서는 ‘인욕(忍辱)’을 제시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주로 인내(忍耐)라는 단어보다 인욕(忍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은 거기에서 나의 욕망이나 욕구를 참으라는 말로 알고 있지만, 실은 상대로부터 오는 모욕을 참으라는 의미라고 한다.
불교 대표경전 ‘금강경’에서도 부처님이 자신의 과거 생에 수행하던 시절, 악인에게 팔다리가 잘리는 고통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화를 내거나 원한의 마음을 품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결국, 거기에도 참아내는 마음이 한 평범한 인간을 부처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욕이라는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혀 금쪽같은 내 삶을 소진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모욕을 지혜롭게 견디어 내는 마음이, 장차 다가올 내 삶에 진정한 행복으로 보상됨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
지혜로운 당신이여.
한산과 습득의 우스꽝스럽고 엉뚱해 보이는 선시에 나타나는 일화처럼, 남들과 몸 비비며 살아 가야할 어쩔 수 없는 삶의 현실에서 필요악처럼 감당해야 할 지금의 괴로움도 이처럼 한바탕 웃음으로 떨쳐 버려라한다.
신체의 변화가 감정을 좌우한다는 가설을 통해보면, 울면 슬퍼지고, 웃으면 기뻐진다는 것 아닌가.
그러기에. 기쁘기 때문에 웃을 수 있지만, 기쁘지 않아도 웃으면 기뻐진다는 것이다.
‘한산과 습득’에서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는 말도
우스갯소리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뭔가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이야기다.
▮ 한산과 습득의 이야기
:: 개구리와 놀기/ 관음사-울산중구
사람들은 한산(寒山)을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얼굴은 그저 그런데다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허름한 누더기 한불
내 말에 신경 쓰는 남은 아무도 없고, 남의 말 또한 나도 관심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산은 이절 저 절을 편하게 왕래 하고····.
오늘은 이 절에서 내일은 저 절에서 절간 수채 구멍에 흘러나온 나물가지 한 조각, 밥그릇에 붙은 밥풀 한 덩이로 연명하면서도 부족함 없고 항상 즐겁기만 하다.
그래도 습득은 오늘도 박수치고 노래하며 세상 떠나가라 웃는다.
개구리를 만나면 놀려 주고 호랑이를 만나도 겁도 없이 때려 줄 것 같다.
무상도 잊고 열반도 잊고 사는 한산과 습득!
그렇게 그들의 웃음엔 아름다운 보리꽃이 함께 핀다.
:: 빗자루 / 삼성사-경북경산
重岩我卜居 鳥道絶人跡-겹겹의 바위틈이 내 사는 곳이고, 새만 다니는 길 인적도 끊겼네.
庭際何所有 白雲抱幽石-뜨락 가에는 무엇이 있는가, 흰 구름만 바위를 안고 있네
住此凡幾年 屢見春冬易-여기에 머문 것이 몇 년인가, 봄 겨울 바뀐 것 누차 보았네.
寄語鐘鼎家 虛名定無益-권문세가에 한마디 부치노니, 헛된 이름은 바로 무익하다네.
:: 시를 읽다/ 은하사-경남김해
한산과 습득을 그린 선종화는 산발하고 누더기 차림인 두 인물이 파안대소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시권(詩卷)을 펴고 읊조리는 자세의 습득과, 붓을 들고 시권 두루마리나 파초잎에 시를 쓰는 한산을 표현한 예이다
한산이 대표 격인 시인으로서 세상 풍자가 심하고 인과응보의 내용을 담은 특이한 형태의 시들이 전해 온다.
그의 시는 흥에 겨워 나뭇잎이나 촌가의 벽에 써놓은 것을 모은 것이라 한다.
그의 시집에는 314수가 들어 있으며, 습득의 시 60수, 풍간의 시 6수도 포함되어 있다.
:: 소에게 법문을 하다/ 해인사-경남합천
어느 날 주지스님이 멀리 가셨다가 산 아래 목장을 지나 돌아오시는데, 한산과 습득은 소 떼와 더불어 놀고 있었다.
한산이 먼저 소 떼를 향하여 말을 했다.
“이 스님들아, 소 노릇하는 기분이 어떠한가, 공짜 밥 먹고 놀기만 하더니 기어코 이 모양이 되었구나.
오늘은 여러 스님들과 함께 법문을 펼칠까 하여 왔으니, 이름을 부르는 대로 이쪽으로 나오시게.
첫 번째, 동화사 경진 스님!”
그 소리에 검은 소 한 마리가 ‘음메~’하며 앞으로 나오더니, 앞발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고 나서는 한산이 가리키는 위치로 가는 것이다.
“다음은 천관사 현관스님!”
이번에는 누런 소가 ‘음메~’하고 대답하더니 절을 하고는 첫 번째 소를 따라 갔다.
이렇게 서른 몇 번을 되풀이하였다. 백여 마리의 소 가운데 서른 마리나 스님들의 환생(還生)인 것이 아닌가.
그들은 시주한 밥만 축내며 공부를 게을리 한 과보로 소가 된 것이다.
몰래 이 광경을 지켜 본 주지 스님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고
그재서야 미치광이 인줄만 알았던 한산과 습득이 성인의 화신임을 알았다고 한다.
:: 사천왕을 때리는 습득/ 적천사-경북청도
습득이 공양간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주지스님으로 부터 고두밥을 쪄서 멍석에 말리라는 일을 받았는데,
고두밥을 지키다가 잠시 졸았는데 그사이 새들이 날아와서 다 먹어버리고 빈 멍석이 아닌 가.
그러자 습득은 절을 지키고 세상을 있다는 사천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하찮은 새들로 부터 고두밥도 못 지키는 주제에 어찌 감히 절을 지킨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면서 막대기로 사천왕을 마구 때렸다
마침 낮잠을 즐기던 주지스님의 꿈에 사천왕들이 나타나서
“주지스님 주지스님 습득이가 저희들을 마구 때립니다.” 좀 말려 주세요 라며 다급하게 애원하지 않는가
깜짝 놀란 주지스님이 일어나 사천왕에게 가 보았더니
습득이가 사천왕을 한창 때리고 있었다.
어이는 없었지만 습득을 용서할 수밖에
:: 부처님에게 공양 올리는 습득/ 백련사-전남강진
습득이 법당 불상에 공양을 올리는 일을 맡고 있던 어느 날.
스님이 법당 앞을 지나가는데 법당 안에서 말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습득의 목소리였다.
“부처님, 밥 잡수시오. 안 잡수셔? 그럼, 내가 먹지롱.”
“부처님, 반찬 잡수시오. 안 잡수셔? 그럼, 내가 먹지롱.”
스님이 이상히 여겨 법당 문을 열어보았더니 습득이 불상 턱 밑에 앉아 공양 올린 밥을 숟가락으로 퍼서 불상 입에 갖다 대고는
자기가 먹으면서 연신, “부처님 밥 잡수시오. 안 잡수셔? 그럼. 내가 먹지롱.” 그러고 있는 것 아닌가.
화가 난 스님은 그때부터 공양 올리는 일을 못하게 하고 부엌에서 궂은 설거지나 하도록 하였다.
▮ 회향
한산의 시집에는
靑山見我無言以生(청산견아무언이생)-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見我無塵以生(창공견아무진이생)-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解脫貪愛解脫塵埃(해탈탐애해탈진애)-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生涯以去(여수여풍생애이거)-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어떠한 상황에도 생활을 웃음으로 녹여내는 ‘한산과 습득’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들의 웃음 속에는 언제나 보제(菩提)의 꽃이 핍니다.
그들의 화사한 미소를 닮은 행복 가득한 오늘 만들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