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10편.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은혜 (구경연민은)
< 부모님의 크신 은혜 깊고도 지중하니, 크신 사랑 잠시라도 그칠 새 없으시네. 앉으나 일어서나 마음을 놓지 않고, 멀더라도 가까워도 크신 뜻 함께 있네. 어머니 연세들어 일백 살 되었어도, 여든 살된 그 아들을 언제나 걱정하네. 이와 같이 크신 사랑 어느 때 멈추실까, 목숨이나 다하시면 그때라야 쉬게 될까. >
부모님에게는 아무리 나이 많은 자식이라도 불안하기는 어린 자식과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로만 보여 애처롭기만 할 뿐, 그 마음의 끈을 내려놓는 일은 결코 생이 마감할 때까지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백 살이 된 노모가 팔십이 된 자식 손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럽게 말을 합니다.
"우리 아들 밥은 먹었느냐. 차조심해라. 항상 잘 보고 건너거라 ... "
어쩌면 그 모습이 우스운 상황일 수도 있지만, 어느 누구라도 가슴이 뭉클해져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머님의 깊은 사랑을 함께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부모의 열 가지 무거운 은혜인 '십중대은'을 설하실 적에 부모로서 자식에게 갖는 일방적인 의무로 말씀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또한 부모니깐 당연히 그러한 것이고, 자식은 부모님에 대한 효도에 있어 형식과 책임을 다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의 은혜와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느껴보라는 이유로 열 가지 은혜를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부모로서 자녀를 가질 때의 마음, 낳을 때의 마음, 기를 때의 마음이 각각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도록 부모의 자세에 대하여 설명해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은혜를 보답하는 마음은 부디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합니다. 자식에 대한 애정만큼 부모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 진심으로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어야, 형식에 그친 효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부모은중경 9.10 편.
- 자식을 위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은혜 (위조악업은)
< 부모님의 크신 은혜 강산같이 중하여서, 깊고 깊은 그 은덕 실로 갚기 어려워라. 자식의 괴로움은 대신 받기 원하시고, 자식들 고생하면 부모 마음 편치 않네. 자식들이 먼 길을 떠나가 있을 때면, 잘 있는지 춥진 않나 밤낮으로 근심하네. 잠시라도 자식들이 어려움 당할 때면, 어머니의 그 마음은 오랫동안 아프다네. >
부모님의 마음은 자식을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행여 자식이 고생할까봐 남의 집 허드렛일이라도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이러한 부모님의 큰 사랑을 망각하고, 오히려 늙고 병들었다고 부모를 업신여기고 부모의 고통을 모른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역죄를 저지르는 불효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역죄는 아버지를 헤치거나 어머니를 헤치거나, 부처님이나 아라한을 헤치거나 스님들을 이간질하는 등의 무거운 죄입니다. 오역죄를 지으면 무간지옥이라는 가장 무서운 지옥에 떨어집니다.
가끔 인륜을 저버리고 존속을 헤친 사건이 보도되면 정말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마음은 자식의 잘못을 대신 받고자 애원합니다. 자식의 괴로움을 대신 받으려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함께 있어 주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
부모님의 마음은 이처럼 자식의 모든 잘못이 다 자신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부모님은 이렇게 자식을 평생토록 걱정하는데. 오히려 세상에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고통을 모른척한다는 것은 가장 나쁜 불효입니다. 부모님의 마음만이라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할지언정 강산같이 무거운 부모님의 은덕을 어찌 다 갚으려는지 불효를 저지르고 맙니다. 근본부터 되짚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은혜 (구경연민은)
< 부모님의 크신 은혜 깊고도 지중하니, 크신 사랑 잠시라도 그칠 새 없으시네. 앉으나 일어서나 마음을 놓지 않고, 멀더라도 가까워도 크신 뜻 함께 있네. 어머니 연세들어 일백 살 되었어도, 여든 살된 그 아들을 언제나 걱정하네. 이와 같이 크신 사랑 어느 때 멈추실까, 목숨이나 다하시면 그때라야 쉬게 될까. >
부모님에게는 아무리 나이 많은 자식이라도 불안하기는 어린 자식과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로만 보여 애처롭기만 할 뿐, 그 마음의 끈을 내려놓는 일은 결코 생이 마감할 때까지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백 살이 된 노모가 팔십이 된 자식 손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럽게 말을 합니다.
"우리 아들 밥은 먹었느냐. 차조심해라. 항상 잘 보고 건너거라 ... "
어쩌면 그 모습이 우스운 상황일 수도 있지만, 어느 누구라도 가슴이 뭉클해져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머님의 깊은 사랑을 함께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부모의 열 가지 무거운 은혜인 '십중대은'을 설하실 적에 부모로서 자식에게 갖는 일방적인 의무로 말씀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또한 부모니깐 당연히 그러한 것이고, 자식은 부모님에 대한 효도에 있어 형식과 책임을 다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의 은혜와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느껴보라는 이유로 열 가지 은혜를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부모로서 자녀를 가질 때의 마음, 낳을 때의 마음, 기를 때의 마음이 각각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도록 부모의 자세에 대하여 설명해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은혜를 보답하는 마음은 부디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합니다. 자식에 대한 애정만큼 부모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 진심으로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어야, 형식에 그친 효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왼쪽 어깨 위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 위에 업어 천만년 동안 부모에게 옷과 음식, 약으로 공양을 한다. 만약 부모가 어깨 위에서 똥오줌을 싸도 불평없이 이와 같은 행동으로 효도를 다해도 역시 부모의 은혜에 다 보답할 수 없다." ☞ 『아함경 阿含經』
부모님의 은혜는 부모님을 양 어깨 위에 업은 것처럼 깊고 무겁습니다. 그 깊은 은혜에 보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부처님께서는 부모의 은덕을 갚으려면 다음과 같이 하라고 일러주셨습니다.
"깊은 은혜를 갚으려거든 부모를 위하여 이 정전을 쓰며, 부모를 위하여 이 경전을 읽고 외우며, 부모를 위하여 죄를 참회하며, 부모를 위하여 삼보에게 공양하며, 부모를 위하여 계를 받아 지니며, 부모를 위해 보시하여 복을 지을 것이니, 만일 이런 행을 행하면 효도하는 자식이라 할 것이다."
왜 그럴까요. 부모은중경을 쓰고 외우기 위해 경을 읽다보면,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무거운지 저절로 알게 됩니다. 따라서 경전을 제대로 읽고서도 감히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쓰며 읽고 또 외우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읽고 읽다보면 저절로 마음속에 죄송스런 생각이 들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됩니다. 그것이 참회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 익숙한 것들에 소홀합니다. 부모님께서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필요할 때는 부모님의 어려움 따위는 아랑곳 않고 내 욕심을 채우기 급급합니다. 하지만 부모님 마음은 자식 걱정으로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에 앉아 계신 심정입니다.
벽화의 그림과 새겨진 글귀를 보면서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를 마음깊이 새기며 부처님의 가르침 따라 반드시 효도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은 곧 과거 어느 생에 나의 부모형제였을 수 있다는 심정으로 이웃에 대한 자비와 사랑을 더욱 더 적극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