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설산수도 (雪山修道) - 안다는 것 느낀다는 것
<선본사- 경북 경산>
도에 이르면 초인간적인 힘을 갖게 된다고 믿는 수행자가 완전한 고행에 들어서 있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찰에 다루어지는 대표적인 벽화로, 부처일대기를 8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한 팔상도(八相圖) 중 다섯 번째에는 석가의 고행을 다룬 그림이 있다.
▮ 고통의 메시지
철저한 고행으로 몸은 수척해질 대로 수척해져. 뼈와 가죽만 남아 힘줄이 드러나고, 뱃가죽은 등에 닿아있는 고행상이다.
고행상에서 표현한 고통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무었을 말하려 하고 있는가.
상대를 이해 할 수 있으려면, 상대의 입장을 완전하게 느낄 수 있어야만 된다.
느낀다는 것은 듣거나 보고서 알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지혜이기 때문에,
안다는 것과 느낀다는 것은 완전하게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을’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갑’의 말에 어쩐지 믿음이 약하듯,
‘중생’을 다 알고 있다는 권위적인 ‘신’의 말씀도 어쩌면 그런 이유로 구구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고행상의 모습은 중생의 고통을 함께 느낌으로,
그를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한 그래서, 그와 내가 하나 되는 과정을 보이는 몸짓이다.
‘설산수도’에는 나를 낮추는 고행을 통해 먼저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려는 마음이 더욱 소중하다는 걸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 상대를 이해하려면 먼저 들어라
소통의 가장 큰 팁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여야 한다고 하지만, 문제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눈을 맞추어 주면서 그의 말에 목에 핏대 세우며 응대했는데 내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면, 그냥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다.
나름 대화중에서 상대의 말을 잘 듣는 나라고 생각하지만
왜 이처럼, 여전히 사람들과의 대화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느낌이 들까?
상대의 말을 들으려는 당시 나의 의도는 무엇 이였을까?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상대의 말에 대응하기 위해서 일까?
불상의 모습에서 무엇 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과장된 커다란 귀다, 그 커다란 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여주고자 함일까 ?.
▮ 모아보는 설산수도
<법주사- 경북 군위>
신흥사- 경북 김천
<안일사- 대구 남구>
<은해사- 경북 영천>
<해인사 홍제암- 경남 합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