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선혜동자와 구리천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현하시기도 전 아득히 먼 과거의 일입니다. 당시는 연등불이라는 과거 부처님께서 계실 때입니다.
어느 날 마을에 부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모든 사람들은 앞 다투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준비를 하였습니다. 마을에 선혜라는 동자가 있었는데, 선혜동자 역시 부처님에게 꽃 공양을 올리기 위해 마을 이곳저곳을 꽃을 구하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꽃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져가 버린 뒤라 더 이상 꽃을 파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때 꽃바구니에 연꽃 일곱 송이를 가진 구리천녀라는 여인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혜동자는 구리천녀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뒤, 지금 자기가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드리겠으니 그 꽃을 나에게 팔아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자는 은화 500냥이나 되는 거액을 내미는 것입니다. 구리천녀는 동자의 행동이 의아해 여줘보았습니다.
"지금 저더러 연꽃 일곱 송이와 동자님의 그 돈을 모두 바꾸자는 말씀이세요? 아니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돈까지 내면서 이 꽃을 사려하나요?" "우리 마을에 연등부처님께서 오신다고 합니다. 저는 수행자의 몸으로 부처님을 직접 뵙고, 부처님으로 부터 내세에 성불할 수기授記를 꼭 받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빛나는 눈동자로 말하는 그의 말에 구리천녀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자를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꽃은 당신에게 그냥 드리겠습니다. 단 저에게도 조건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저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오늘 동자님의 늠름한 모습을 보니 그동안 제가 찾던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와 결혼을 해 주세요." 난데없는 구리천녀의 요구를 듣고 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인이여, 나는 이미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대와 결혼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대신 다음 생에 다시 만나면 꼭 그대와 결혼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수행하겠다는 마음을 내었을 때 저의 수행을 위해 기꺼이 헤어질 수 있다는 약조를 해 준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이미 선혜동자에게 반하여 낭군으로 마음을 정해 버린 구리천녀는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며, 다섯 송이는 선혜동자의 원을 위해 그리고 두 송이는 자기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부처님께 꽃을 바쳐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선혜동자와 구리천녀는 연등불을 찾아뵈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갖가지 공양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선혜동자도 갖고 있던 꽃을 올리며 마음 깊이 원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부디 다음 세상에는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해 달라는 등 개인의 복을 빌었던 반면, 선혜동자는 부처님 앞에서 성불을 발원하였습니다. 장차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선혜동자의 깊은 마음을 이미 부처님께서도 알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을 위해 머리를 늘어뜨리는 선혜동자 그는 훗날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환생한다 (좌) / 대한불교 천태종 경산 장엄사 (우)
그리고 모든 공양물이 바쳐지자 부처님께서 정사로 돌아가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시려는데, 마침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는 탓에 길바닥이 진흙길이었던 것입니다. 선혜동자는 재빨리 묶었던 머리를 풀어 헤치며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부처님, 여래께서 지저분한 흙탕물을 밟고 가실 수는 없습니다. 부디 제 머리카락을 밟으시옵소서." 연등부처님은 다시 자리에 앉아 선혜동자를 칭찬하시더니, 오랫동안 쌓아 온 공덕으로 장차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선혜동자는 싯다르타 태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선혜와 결혼하고자 소원했던 구리천녀는 야소다라 공주로 태어나 둘은 정말 혼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생에서 약속한대로 싯다르타가 출가할 때 둘은 부부의 연을 끊어 버렸고, 싯다르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