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무착스님과 문수보살 - 관습에 대한 집착
<해인사- 경남 합천>
공양간에서 한 스님이 솥 위에 있는 문수보살을 요절을 낼 듯이 밥주걱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충격적인 그림이 있다.
▮ 전삼삼 후삼삼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간다.
무착스님은 누구나 자신처럼 정확하고 완전한 수행을 하여야 문수보살을 만날 수 있노라 자랑하고 다니던 스님이 엇다.
이를 증명하려는 듯 때를 잡고 늘 해 왔던 수행방법으로 하루도 거스르지 않는 삼보일배의 오체투지의 원칙을 완전하게 지켜가며 문수보살이 있다는 험난한 오대산에 고생고생 하며 올라 결국 반야사에 다다랐으나
과욕한 집착 때문인지 정녕 문수보살을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의 절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고집스럽도록 정확함을 지켜가며 오대산으로 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그토록 평범하게 보였던 그 노인이 바로
그렇게도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문수보살임을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그때 고집스런 원칙에 매달려있는 자신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던 그 노인의 모습을 한 문수보살이 자신에게 던진 화두는 ‘전 삼삼 후 삼삼’ 前三三 後三三 이였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이만큼이 옳고 그만큼은 부족하다고 내가 정한 답이 옳다는 논리로,
대립적인 편 가름으로 답을 정하려 했으며 상대에게도 내가 정해놓은 답을 선택 하도록 종용 하고 있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많다 작다는 수(數)에 대해서 비교하며 집착 하려 하는데.
문수보살의 화 두 ‘전 삼삼 후 삼삼’이란 ‘앞에도 서너 개 뒤에도 서너 개’란 말로 수에 대한 기준을 완전하게 흩트려 버리고 있다.
▮ 문수보살의 뺨을 때린 무착스님
오대산에서 집착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무착스님이 절로 돌아와 공양간 일을 맡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죽을 끓이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 위로 문수보살의 모습이 함께 피어오르는 게 아닌가.
이 모습을 본 절집의 대중들은 놀라 범종을 치고 향을 피우고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느라 난리가 났다.
분주한 모습을 본 무착스님이 그곳으로 달려와.
공양간에 있던 밥주걱으로 문수보살 환영을 후리치며
‘문수는 무슨 문수인가, 석가나 미륵이 나타나도 그들에게 내 밥주걱 맛을 보여주리라’ 라며 호통을 치며 살불살조(殺佛殺祖)의 기상을 보인 것이다,
이 모습으로 집착을 벗어나 진리를 채득한 선사의 안목을 알리고 있다.
‘무착스님과 문수보살’은 숫자에 집착하며 비교하고 분별할수록 그 만큼 문수보살의 마음과도 멀어지게 된다는 뜻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 무착스님의 살불살조(殺佛殺祖)
무착스님이 솥 위에 있는 문수보살을 요절을 낼 듯이 밥주걱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의미는 무엇인가.
현실과 접목되지 못한 불교는 허상만 쫓을 뿐이라며,
내가 붙들고 있는 관습 깨뜨리고 변화해야하기에 지금까지 내가 믿고 있는 모두 죽여 버려라. 는 의미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 며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임제의현 선사가 던진 화두다.
이 화두에서의 살불살조(殺佛殺祖)는 육체적·생명을 죽이는 살인은 물론 아니다.
‘우상’으로 떠받드는 부처와 조사, 라는 정신적·인격적 죽임으로 한. 한마디로 ‘우상 타파’다.
즉 기 존의 관습적 전통에 갇혀 있는 체 지금껏 쫓고 있는 우상들을 과감히 타파하는 노력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우상’이란 우리가 사실로 믿고 싶은 이미지일 뿐으로 , 실제(實際)를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역대 선사들은 인간의 욕망이 세상을 혼란시키는데, 언어가 그 첨병 역할을 한다고 역설한다.
이들이 사악한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있으면 깨달음의 실제와 만나기도 어렵고 고요와 평안에도 끝내 도달하지 못하기에 언어의 이 같은 모순적 측면들을 모두 부셔버리라고 외친다.
깨달음이란 자신을 붙들고 있는 우상이라는 껍데기를 부수고 나오는 ‘존재의 변화’다.
현실적인 삶과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불교는 이름일 뿐이고 허상일 뿐이라고.
깨달음을 얻겠다며 형식적으로만 선을 붙들고 앉아있으려는 자세를 떨어내야한다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선사들의 간곡한 가르침으로 무착스님과 문수보살의 벽화에서 느껴 본다.
▮ 모아보는 무착스님과 문수보살
:: 영화사- 서울 광진
:: 용연사- 대구 달성
:: 은해사- 경북 영천
:: 태고사- 충남 금산
:: 화장사- 대구달성
▮ 동화사 대불 33m의 비밀
대불의 높이는 33m라고 하며 33이란 불교의 우주관으로 보는 도리천(忉利天) 33천을 의미합니다.
불교의 우주관에서는 세계의 중심에는 하늘로 통하는 수미산(須彌山)이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33의 신들이 살고 있는 도리천이 있다고 하여.
결국 육신의 몸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높이가 도리천이고, 그 이상의 세계는
육신을 떠난 정신의세계로 오를 수 있는 세계라 하여 이곳이 바로 집착의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육신을 떠나 대 자유를 찾는 세계라고 합니다.
그렇게 동화사의 대불은 질병으로부터 떠난 대자유(大自由)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오늘 동화사 33m 대불을 만나며 너무도 소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