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내 깊은 뜻 누가 알리오
[내 깊은 뜻 누가 알리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부처님께서 계실 당시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문자나 어떤 다른 방법으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인도에서는 외워서 전하는 형태의 암송이 전통적인 지혜의 전달 방식이었습니다. 불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부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을 별도로 기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찾아뵙고 여쭈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뜻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은 경전의 첫 머리에 붙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하셨던 법문이 암송되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경전으로 옮겨졌습니다.
따라서 모든 경전이 시작될 때 여시아문이라고 하면 '이렇게 들었다'라는 뜻인데, 결국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언제 말씀을 하셨는지, 그 곳이 어디였으며 누가 참석을 했는지 등 설법하신 배경을 마치 증명처럼 경의 첫머리에 적게 됩니다.
부처님의 설법에는 많은 대중이 법문을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여러 보살님들이 참석하였고, 덕 높은 스님들과 수 많은 하늘의 천신, 왕족, 평민 누구든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가르침을 배우고 싶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법을 전했습니다. 마치 대낮의 환한 태양이 모든 곳을 밝혀주는 것과 같은 평등입니다.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리면 차별없이 모든 곳을 적셔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두 손모아 합장한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부처님은 언제나 한 말씀으로 법을 설하고 계십니다.
단양 구인사 광명전 벽화에는 부처님께서 설법하시고, 대중들이 법문을 듣고 있는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두 손 모아 우러러 보는 청중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 마치 꽃비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내 깊은 뜻 누가 알리오]
노사나불로 화하시어 화엄경을 설하시다 - 단양 구인사 광명전 벽화로 그려진 불화
"신기하고 신기하여라!
어찌 이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를 모두 갖추고 있는가!
그런데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구나."
부처님께서 진리의 세계를 보셨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무엇을 보셨는지, 진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감히 우리가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욕심이지 않을까요. 부처님께서도 해탈의 세계를 보신 후, 중생들에게 전하는 것을 망설이셨다고 합니다. '과연 누가 큰 가르침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늘의 천신, 범천이 나타났습니다. 이대로 진리의 말씀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중생을 제도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법을 설해 주소서. 비록 이 세상은 먼지로 가렸지만, 사람들이 법을 듣지 못한다면 더욱 타락해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법을 이해하는 자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천신의 거듭된 간청을 들어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셨습니다. 사람들의 수준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마치 호숫가의 연꽃과도 같았습니다. 어떤 연꽃은 진흙 속에 잠겨 꽃을 피우지 못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연꽃은 물 속에 뿌리를 두었지만 물 위로 올라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하셨습니다. 진흙 속만 벗어난다면 본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저 연꽃들처럼, 중생들을 어리석고 악한 마음에서 구제해 주리라 다짐하신 것입니다.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가르친 경전으로 심오한 부처님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오한 탓인지 중생들의 마음속에 분명 참된 성품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아직까지 진리의 내용을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마치 진흙이 너무 두꺼워 빛을 보지 못하는 연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법문이라도 듣고 또 듣게 되면 반드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진흙이 아무리 두껍더라도, 걷고 또 걷어내면 그 아래 맑고 투명한 샘물이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