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사명대사
<직지사- 경북 김천>
우리는 '사명대사'하면 먼저 떠올리는 건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공포로 몰아넣은 용맹스러운 승병(僧兵)의 이야기고,
또 하나는 그의 얼굴에 나타난 풍성한 턱수염이다.
▮ 임진왜란과 승병에 대한 단상(斷想)
< 행주산성의 승병도 – 경기도 고양시 >
남도(南道) 지역의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승병에 대한 활약상을 안내하고 있다.
승병의 활약상에서 늘 그러 해왔던 것처럼 영웅으로 생각해 버리기에는 어떤 고민이 따른다.
아마 격렬한 살육의 현장 한가운데 승병(僧兵)이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스님이 살인을 할 수 있느냐?"라는 볼멘소리를 못 들은 척하기는 어렵다.
비록 왜군(倭軍)이 침략자이기는 하나, 그들도 인간인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인데,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스님의 살생을 정당화할 수는 있는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본다면,
살생(殺生)의 행위는 바라이 죄에 해당하는 중죄로. 살인은 물론이고 살인 시도만 하더라도 바라이 죄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설사 그것이 애국심의 발로라 하더라도 살인을 하거나 살인을 계획한 순간 비구로서의 자격은 상실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서산, 사명, 영규, 처영 같은 스님들은 지금까지도 영웅담이 이어지고 있다.
스님들에 어울리지 않는 어쩐지 어색한 '영웅'칭호
당시 조선의 불교는 숭유억불로 인해 깊은 침체에 빠져있었고, 선종의 법맥(法脈)마저도 대부분 끊겼다.
스님들 그들은 전쟁터로 나섰다 왜일까?
그렇게 조선의 대부분의 비구들이 자격을 상실한 상태이니 전장에 나서도 문제 될 것 없다는 명분이라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 임진왜란 그 살육의 현장으로 내 몰린 스님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님들이 살생의 금기를 깨트리며 적극적으로 전장에 나선 이유로 혹자는 이렇게 알린다..
거의 실질적 폐불(閉佛) 상태로 몰리던 조선의 불교가 어떤 계기로 나라를 구하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되었을까.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존위가 막바지에 이르자, 선조와 서산대사의 회동이 이루어졌고, 이후 불교의 호국 활동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속절없이 밀리기만 하던 전세는 역전되어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정으로부터 승병의 공적이 인정받아 승려의 지위는 완전히 복권된다,
이로써 산중에 머물러 있던 불교가, 도성 내로 활동 범위가 확대되는 기반이 마련되는 계기가 된 걸 보면.
그때의 회동에서 어떤 도네이션이 (donation) 짐작 가는 대목이다.
▮ 사명대사의 수염.
< 연화사- 경남 통영>
사명 스님 하면 '수염'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으니, 사명 스님의 수염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오늘날 불교의 ‘율장'에서 '머리카락이나 수염은 출가자라면 반드시 깎아야 한다‘라고 하며
이런 삭발 의식은 세속인과 출가자를 구분 짓는 계기이며, 출가자로서 거듭나는 과정 중에 하나라 한다.
그처럼 승려가 되기 위해 출가한다는 것을 흔히 ‘머리 깎는다’라고 할 정도로 승려와 삭 발은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된다.
경전 ‘비니모경’ 제3권에 '머리를 깎는 이유는 교만을 제거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믿기 위함'이라는 구절이 있으니
머리칼이나 수염을 깎는 행위는 ‘집착과 교만을 부수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나아가 수행을 방해하는 근원인 ‘아집과 온갖 유혹의 감정까지 모두 끊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행위라 하는데.
그러한 승가(僧伽)의 엄한 규율 속에서 사명은 스님 신분으로 수염을 기른다는 것은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상당한 현실 저항의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기에,
스님 직분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장의 장군으로의 영웅담에 가리어 그가 현실에 맞서 저항하려 했던 사상은 아쉽게도 전해오지 않고 있다.
사명 스님은 파격적인 수염 기르기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남성의 상징이라 믿고 싶은 수염에 대한 여성의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여성의 대다수는 깨끗하게 면도한 남성의 얼굴을 선호했고(43.84%), 긴 그루터기 수염(26.03%), 짧은 그루터기 수염(16.44%), 짧은 수염(10.96%)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사명대사처럼 풍성하게 기른 수염은 선호하는 사람이 2.74%로 가장 선호도가 낮았다.
결국 여성들은 남성이 깔끔히 면도한 모습을 가장 선호했다는 결과다.
▮ 모아보는 사명대사의 초상
:: 국립박물관
:: 동화사-대구 동구
:: 표충사-경남 밀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