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목탁의 유래
물고기 참회서 유래, 깨어 있는 정신의 표상
▲ 부산 삼광사 대웅보전에 그려진‘목탁의 유래’를 표현한 벽화.
푸른 물결이 일렁거리는 바다 위 작은 배에 스님이 합장을 하고 앉아 있다. 스님 앞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있는데 등에 나무가 솟아있다. 그런데 물고기는 눈물을 흘리며 스님을 향해 있고 나무 위에는 목탁 하나가 구름 속에 비치고 있다.
부산 삼광사 대웅보전 왼쪽 외벽에 그려진 벽화다. 삼광사 뿐 아니라 많은 절의 벽화에 이러한 도상이 등장한다. 어지간한 불자들은 이 그림이 목어(木魚)가 만들어지게 된 유래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 것이다. 목어는 법고·범종·운판과 더불어 절에서 의식이나 법회 등을 할 때 사용하는 불전사물(佛殿四物) 중의 하나다. 오래전부터 절에는 목어가 만들어진 배경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어느 절에 나이 어린 행자가 있었다. 그 행자는 수행은 하지 않고 온갖 엉뚱한 일만 저지르고 다녔다. 그러다가 젊은 나이에 그만 요절을 하고 말았다.
몇 해가 지난 후 그 절의 큰스님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데, 등에 나무가 난 큰 물고기가 다가와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큰스님이 숙명통으로 관해보니 바로 말썽장이 행자가 물고기의 몸을 받았는데, 그나마 등에 나무가 나서 바람이 불 때 마다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 몸을 벗고 물고기로 환생한 것도 안타까운데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 있으니 움직이기에 얼마나 불편할까. 노스님은 물고기의 업보를 다 녹여 주어야겠다는 일심으로 수륙재를 지내 주었다. 그러자 홀연히 물고기가 스님께 나타나 “스님의 법력으로 중생의 몸을 벗었다”며 “저의 등에 났던 나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걸어두고 두드릴 때 마다 잘못을 각성하는 도구로 삼게 해 달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리하여 스님은 물고기 등의 나무를 깎아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절에 걸었다. 물론 그 나무를 치면서 늘 부지런하게 수행하라는 가르침을 펼쳤다.
이것이 목어가 만들어진 유래다. 불전사물로서의 목어는 대체적으로 물고기의 모양이고 뱃속이 비어 있다. 이를 축소하여 의식을 할 때 두드리는 것이 목탁(木鐸)이다. 그러니까 목어와 목탁은 같은 개념이고 쓰임에 따라 크기가 다를 뿐이다.
절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불구가 목탁이고, 조석 예불이나 각종 법회 및 의식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불구 또한 목탁이다. 목탁 소리에 맞춰서 염불을 하고 절을 하기도 한다. 목탁은 정신을 일깨우는 불구인 동시에 의례를 일률적으로 진행하게 하는 신호용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물고기는 잠을 잘 때 눈을 감지 않는다. 그래서 목탁은 항상 깨어 있는 정신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
질서를 잡아 나가는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경우를 목탁에 빗대기도 한다. ‘언론은 사회의 목탁’이라는 말이 그런 예다. 세상을 향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잘못을 반성하게 하는 역할이 목탁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유학의 가르침인 〈논어〉에도 목탁이 나온다. ‘팔일(八佾)’ 편에 위나라에 속하는 의(儀)라는 곳의 묘지기가 공자를 만난 뒤에 한 말이 소개되고 있다. 묘지기는 “제자 되는 이들아. 노나라에서 관직을 잃어버린 것을 무얼 걱정하시는가. 천하에 도가 없어진지 오래이니 하늘에선 장차 선생님으로 목탁을 삼으시려 하시는 것을”이라고 경탄한다. 한낱 묘지기지만 여러 성인군자들을 만난 사람이라 한 눈에 공자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공자가 곧 천하의 목탁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는 말이다.
불자들에게 목탁은 그저 절에서 쓰는 불구가 아니다. 끝없는 자기반성과 새로워지려는 노력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누구나 가슴에 목탁 하나를 품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태해지려는 순간마다, 유혹이 다가오는 순간마다 스스로 마음속의 목탁을 힘껏 두드려 보라. 그렇지 않으면 숙세의 악연들이 치성하여 악업을 지어가게 될 뿐이다.
오늘 나는 마음속 목탁을 몇 번이나 두드리고 살았는가? 잠들기 전에 꼭 따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