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문화 - 나한 기도의 공덕과 방법
나한 기도의 공덕과 방법
나한신앙은 관음신앙과 더불어 대표적인 현세의 문제와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현세신앙이다.
특히 나한들은 신통이 뛰어나고 다수로 구성되기 때문에 기도의 효과가 빠르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기도의 대상이 불보살이 아닌 고승들이므로 개인적인 감정이나 호불호를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반적으로 나한은 공양물을 좋아하며 장난이 심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공양물을 많이 올리거나 소원이 성취되면 공양하겠다는 조건을 걸면 가피가 빠르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이 "소원이 성취되면 무엇을 해드리겠다"고 한 뒤
추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소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즉 골탕을 먹이는 일이 발생하는게,
이는 관음기도와는 다른 나한기도만의 특징 중 하나다.
불교에서는 기도의 대상을 상 · 중 · 하로 나누는데,
하로 갈수록 기도영험이 빠른 반면에 세속적인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즉 일종의 대가를 원하는 경우가 많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심지어 일이 꼬이는 재앙이 생기는 경우마저 있다.
이는 상급의 대상인 불보살님은 무한 자비를 베푸는 분들이지만,
하급으로 가면 이들 역시 사욕이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보다는 높은 깨달음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속된 기운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상태라는 말이다.
마치 덕이 있는 노인들이 가끔씩 부리는 투정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기도 대상의 상중하
· 상 ㅡ 불보살님
· 중 ㅡ 나한, 신중 등
· 하 ㅡ 독성, 산신, 용왕등
한국 불교에선 나한신앙은 고려시대에 지속적으로 살펴지지만,
특히 유행한 것은 원나라의 영향에 따른 것이다.
나한기도와 관련하여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영험담은 해주 신광사神光寺의 이적이다.
이곳에는 923년 중국 양나라에서 전해진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400여 년 뒤인 1330년 왕위 계승에서 밀린 원나라의 황자가 고려의 대청도로 유배를 오게 된다.
이후 신광사 부처님의 꿈을 꾸고는 신광사에 들러 오백나한에게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하소연한 뒤,
"원나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사찰을 지어드리겠다"고 발원한다.
그후 이 황자는 원으로 귀국하여 마침내 1340년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분이 바로 고려의 여인 기황후의 남편이기도 한
제11대 혜종順帝(1320~1370)이다.
혜종은 약속을 잊고 있다가 꿈속에서
"왜 황제가 되었으면서도 빨리 실행에 옮기지 않느냐?는 채근을 듣고는
깜짝 놀라 1341년 신광사를 원찰로 지정한 뒤 대대적인 후원을 하게 된다.
혜종의 유배와 고려에 원찰을 지정하는 진기한 사건은 중국의 정사인
『원사元史』 「본기本紀」 '순제順帝'와 『고려사』 「세가世家36」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또 나한의 영험함에 대한 내용은 혜종이 위소에게 짓도록 한
〈고려해주신광사비高麗海州神光寺碑〉를 통해 확인되는데,
이 사건은 고려 후기에 나한신앙이 크게 유행하는 한 배경이 된다.
고려 후기에 나한신앙이 유행했다는 것은
현존하는 고려불화 중에 〈나한도〉가 10여점이나 남아 있는 것을 통해서 파악해볼 수가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가 되면 사찰의 경제력이 줄다 보니,
오백나한처럼 대규모 불사보다는 십육나한같이 축소되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