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순례지 불영사 전각 해설
**1. 불영사 대웅보전.
보물 1201호.**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하는 절이다.
대웅보전은 절에서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중심 법당을 가리키며 지금 있는 건물은 안에 있는 탱화의 기록으로 영조 11년(1735)에 세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3칸씩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각 공포의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건물에 색을 칠한 단청 부분을 들 수 있는데 바깥쪽은 다시 칠하여 원래 모습을 잃었지만 안쪽은 그 형태가 잘 남아 있다.
천장부분을 비롯한 벽, 건물을 지탱하는 굵직한 재료들에 그림을 그린 기법들은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건축양식과 기법연구, 격조 높은 불교그림과 단청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2. 불영사 영산회상도
보물 1272호.**
영산회상도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대개 불상의 뒷벽에 위치한다.
이 영산회상도의 석가여래는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우견편단의 옷을 걸쳤으며,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석가여래 주변으로 10대 보살, 사천왕상, 상단의 10대 제자 등이 배열되어 있다.
주로 영산회상도에서는 8대보살이 그려지는데, 이 그림에서는 10대보살을 표현한 점과 석가불 아래의 그 보살이 유난히 큰 점이 특징이다.
석가의 옷이 붉은색이고 석가 뒤의 광배가 이중으로 붉은 테를 두른 점등은 조선 후기의 불화양식보다 약간 앞선 양식적 특징이다.
채색의 사용법이 유창하고 아름다우며 묘사법이 정밀하여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
조선 영조 9년(1733)에 그려진 이 그림은 격조있는 양식, 양호한 보존상태 등으로 18세기 초 조선불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3. 불영사 신중탱화.
대웅보전에 봉안되 있는 이 신중탱화는 삼베(麻) 바탕에 채색한 것으로 전체 크기는 세로 230.5cm, 가로 236.2cm이며, 화면크기는 세로 214.5cm, 가로 223.1cm이다.
팔곡병풍을 배경으로 상단에는 제석과 범천을,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축으로 좌우에 무장의 천룡팔부중 (天龍八部衆)을 묘사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가장 많이 애용되었던 것으로 신중도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제석천과 범천은 주위로는 일월천자와 보살, 주악 천중 등의 천부중(天部衆)이 둘러 서 있다. 이 아래 갑옷을 입고 깃털장식 투구를 쓴 위태천은 두 손으로 양쪽에 가지가 달린 삼차극(三叉戟)을 세워 잡은 모습인데, 앞 열 좌우로 사천왕, 팔부중 등 천룡팔부를 각각 3위씩 배치하였다.
그 뒤쪽 열에는 투명 두건과 草衣 착용에 白羽扇을 쥔 산신,명왕과 사갈라용왕을 배열하였다.
색채는 적색과 녹색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반면 돋보이는 청색과 흰색의 남용으로 인해 화면이 밝아졌으나 차분한 느낌을 유지하고 있다.
화면 하단의 畵記를 통해, 1860년(철종 11)에 金魚인 意雲 慈友 등 5인의 畵員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意雲(堂) 慈友(1856~1873년 활동)는 사불산 대승사를 중심으로 경상도와 강원도까지 활동한 金魚로서 최고의 지위인 도총섭의 직함까지 갖춘 화승이었으며, 그의 작품은 대부분 경상도 지역에 보존되어 있다.
이 신중탱화는 하단에 촛농이 떨어진 자국 등을 제외하면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 정밀한 형태 묘사, 조화로운 색채의 구성, 힘 있는 필선, 화사한 문양과 장식 등에서 완성도가 높은 19세기 불화 가운데 수작이라 판단되므로 有形文化財로 지정되였다.
로타리 불자회 지도법사 보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