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병쇄수현 (甁碎水懸) - 물병깨기
<금산사- 전북 김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이야기로 두 스님 앞에서 한 남자가 줄에 메 달린 물병을 깨트리고 있는 그림이다.
그들은 왜 그러고 있는 것일까 ?
7세기 우리나라에서 불교계 큰 인물 3명을 꼽는다면 당연히 의상(義湘). 원효(元曉). 그리고 부설(浮雪)을 꼽는데
그들 중, ‘부설’은 스님이었지만, 중도에 결혼하게 되어서 ‘거사’로 불리고 있다.
불국사 스님이었던 부설스님은 잘 알고 지내던 두 스님들과 의견이 모아 높은 공부를 위해 득도(得道)에 좋다는 오대산으로 가기위한 여정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가던 중 부설스님은 사정이 생겨 중도(中途)에 포기하려 하고, 일행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부설스님만 남겨 두고 다른 두 스님은 목표로 했던 데로 오대산으로 떠나게 된다.
동료와 떨어진 부설스님은 동료 스님들과는 길은 달랐지만, 가정을 이루고. 아들딸을 낳아 살면서 틈틈이 재가불자로 열심히 수행에 매진하며 하루하루를 보네고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오대산에 만족스런 공부를 마친 두 스님은 의기양양 경주로 돌아오게 되는데, 재가 불자로 살고 있는 부설거사가 궁금해 찾아오게 된다.
내 한 몸 던져 집중해도 이루기 힘든 도의 길인데, 처자식을 거느리고 도를 닦는다니, 수행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부설의 득도는 물 건너 가버렸겠구먼!”
하면서, 출가자의 본분을 외면한 채 가족을 봉양하며 참선한다는 부설거사 앞에 나타나 멋지게 차려입은 스님옷 가사장삼을 바람결에 휘날리며 훈계하며 의시대고 있다.
그런 두 도반스님들 에게 부설거사는 서로의 도력을 증명하자면서, 마당에 걸려있는 줄에 물병을 매달고 물병 깨기를 해 보기로 의견이 모았다.
찾아 온 두 스님은 줄에 달린 물병을 깨트리자 병속의 물도 바로 쏟아 내렸지만,
부설거사가 깨트린 병속의 물은 신기 하게도 흘러내리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부설거사의 이야기 에서 불교의 신통력을 자랑함이 아니라면, 부설거사의 물병 깨기를 통해 과연 우리에게 어떤 뜻을 전하기 위함일까?
물병은 내가 담아두고 있는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의 모습이며,
깨진 물병에서 물이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는 것은, 공한 충격에서 가치를 지켜내지 못하고 깨진 병과 함께 그렇게도 쉽게 무너지는 ‘허상의 가치’라 설명하고 있다.
반하여
부설거사의 깨진 물병에서도 쏟아져 내리지 않는 물방울은 어던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수행의 높은 경지를 나타내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 부설거사의 재가 수행
남들이 장에 간다고 거름지고 따라간다는 말이 있지만.
부설거사는 오대산으로 공부하러 가는 동료를 따라 붙지 않고 자기 길을 선택하여 재가자로 남게 된다.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항상 나를 남과 비교하는 원인에서 생긴다고 하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잇듯, 삶에서도 더함 도 못함도 따로 정해진 것 없는 것이다.
멀리 있기에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상대의 부러운 그 모습이 허상이라면.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참 현실이 실상임을 인정하고,
현실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 할 때.
바야흐로, 헛된 망상을 쫓는 집착의 늪으로 부터 단멸(斷滅)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부설거사가 물병을 깨트리는 소리에는
부처님가르침의 길은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너의 삶도 법, 지금 내 삶도 법, 이 모두가 법이다’ 라는 소리로 들리는 듯하다.
‘병쇄수현’에서는 몸은 비록 팍팍한 속가에 의탁해 살고 있지만 이런 나의 삶 또한 수행의 기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교훈을 그려내고 있다.
▮ 회향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말에는,
변화하는 현실을 바로보지 못한 체, 된장 냄새나는 과거 지식이나 붙들고 자아도취에 빠져 교만 부리며, 과거 영웅담을 들먹거리며 있는 모습을 ‘라떼족’이라 부르는데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체. 알량한 자존심 높임에만 열중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봅니다.
"어릴 적에는 꿈을 먹고 살고 나이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했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끝도 없는 옛날 타령
그도 그럴 것이, 팍팍하고 험하디 험한(?)세월을 살아오면서 보고 느꼈던 지혜이며 경험했던 것이기에...
젊은이에게도 한 동안은 그게 먹혔겠지만
급변하게 변하는 디지털세계
남을 이해 할 엄두도 못 낸 채로 그렇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패러다임은
깨진 물병처럼 이제 더 이상 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무시될 것임을 직시
세상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 어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젊은 이들에게 라떼족이라는 말을 안 듣겠지요.^^
항상 무었이든 열씸하여 순간순간 행복 하시길요
▮ 모아보는 병쇄수현
:: 각화사-경북 봉화
사찰벽화이야기 36- 병쇄수현 (甁碎水懸) --- 물병깨기
<금산사- 전북 김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이야기로 두 스님 앞에서 한 남자가 줄에 메 달린 물병을 깨트리고 있는 그림이다.
그들은 왜 그러고 있는 것일까 ?
7세기 우리나라에서 불교계 큰 인물 3명을 꼽는다면 당연히 의상(義湘). 원효(元曉). 그리고 부설(浮雪)을 꼽는데
그들 중, ‘부설’은 스님이었지만, 중도에 결혼하게 되어서 ‘거사’로 불리고 있다.
불국사 스님이었던 부설스님은 잘 알고 지내던 두 스님들과 의견이 모아 높은 공부를 위해 득도(得道)에 좋다는 오대산으로 가기위한 여정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가던 중 부설스님은 사정이 생겨 중도(中途)에 포기하려 하고, 일행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부설스님만 남겨 두고 다른 두 스님은 목표로 했던 데로 오대산으로 떠나게 된다.
동료와 떨어진 부설스님은 동료 스님들과는 길은 달랐지만, 가정을 이루고. 아들딸을 낳아 살면서 틈틈이 재가불자로 열심히 수행에 매진하며 하루하루를 보네고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오대산에 만족스런 공부를 마친 두 스님은 의기양양 경주로 돌아오게 되는데, 재가 불자로 살고 있는 부설거사가 궁금해 찾아오게 된다.
내 한 몸 던져 집중해도 이루기 힘든 도의 길인데, 처자식을 거느리고 도를 닦는다니, 수행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부설의 득도는 물 건너 가버렸겠구먼!”
하면서, 출가자의 본분을 외면한 채 가족을 봉양하며 참선한다는 부설거사 앞에 나타나 멋지게 차려입은 스님옷 가사장삼을 바람결에 휘날리며 훈계하며 의시대고 있다.
그런 두 도반스님들 에게 부설거사는 서로의 도력을 증명하자면서, 마당에 걸려있는 줄에 물병을 매달고 물병 깨기를 해 보기로 의견이 모았다.
찾아 온 두 스님은 줄에 달린 물병을 깨트리자 병속의 물도 바로 쏟아 내렸지만,
부설거사가 깨트린 병속의 물은 신기 하게도 흘러내리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부설거사의 이야기 에서 불교의 신통력을 자랑함이 아니라면, 부설거사의 물병 깨기를 통해 과연 우리에게 어떤 뜻을 전하기 위함일까?
물병은 내가 담아두고 있는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의 모습이며,
깨진 물병에서 물이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는 것은, 공한 충격에서 가치를 지켜내지 못하고 깨진 병과 함께 그렇게도 쉽게 무너지는 ‘허상의 가치’라 설명하고 있다.
반하여
부설거사의 깨진 물병에서도 쏟아져 내리지 않는 물방울은 어던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수행의 높은 경지를 나타내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 부설거사의 재가 수행
남들이 장에 간다고 거름지고 따라간다는 말이 있지만.
부설거사는 오대산으로 공부하러 가는 동료를 따라 붙지 않고 자기 길을 선택하여 재가자로 남게 된다.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항상 나를 남과 비교하는 원인에서 생긴다고 하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잇듯, 삶에서도 더함 도 못함도 따로 정해진 것 없는 것이다.
멀리 있기에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상대의 부러운 그 모습이 허상이라면.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참 현실이 실상임을 인정하고,
현실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 할 때.
바야흐로, 헛된 망상을 쫓는 집착의 늪으로 부터 단멸(斷滅)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부설거사가 물병을 깨트리는 소리에는
부처님가르침의 길은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너의 삶도 법, 지금 내 삶도 법, 이 모두가 법이다’ 라는 소리로 들리는 듯하다.
‘병쇄수현’에서는 몸은 비록 팍팍한 속가에 의탁해 살고 있지만 이런 나의 삶 또한 수행의 기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교훈을 그려내고 있다.
▮ 회향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말에는,
변화하는 현실을 바로보지 못한 체, 된장 냄새나는 과거 지식이나 붙들고 자아도취에 빠져 교만 부리며, 과거 영웅담을 들먹거리며 있는 모습을 ‘라떼족’이라 부르는데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체. 알량한 자존심 높임에만 열중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봅니다.
"어릴 적에는 꿈을 먹고 살고 나이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했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끝도 없는 옛날 타령
그도 그럴 것이, 팍팍하고 험하디 험한(?)세월을 살아오면서 보고 느꼈던 지혜이며 경험했던 것이기에...
젊은이에게도 한 동안은 그게 먹혔겠지만
급변하게 변하는 디지털세계
남을 이해 할 엄두도 못 낸 채로 그렇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패러다임은
깨진 물병처럼 이제 더 이상 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무시될 것임을 직시
세상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 어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젊은 이들에게 라떼족이라는 말을 안 듣겠지요.^^
항상 무었이든 열씸하여 순간순간 행복 하시길요
▮ 모아보는 병쇄수현
:: 각화사-경북 봉화
:: 동림사- 경남 김해
:: 반룡사- 경북 고령
:: 선암사- 부산 진구
:: 직지사- 경북 김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