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 1. 1. 모래 공양을 올린 아쇼카 왕
부처님을 만난 이들은 다양합니다.
평범한 사람들, 왕족, 귀족, 노비 등과 같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과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 등 실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이들의 성품도 다양한 만큼 저마다 다른 근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마치 한 교실에 여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데
어떤 학생은 한 번의 설명에 바로 이해를 하는 반면,
같은 내용이라도 설명을 쉽게 풀어줘야 알아 차리는 학생이 있습니다.
하물며 서로 다른 학년의 학생들이 한 곳에 모였다면 더욱 이해도의 차이가 클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대중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생에 따라, 살아 온 환경과 언어, 문화에 따라 법문의 내용이 모두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이들을 제도하는 방법이 같을 수도 없습니다.
상대에 따라 다른 설법, 이것을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합니다.
상대의 눈높이, 즉 근기[機기]에 따라 [對대] 다른 가르침[法법]을 말씀[說설]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의 일생은 단 하루도 중생제도를 멈추신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열반에 드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자를 받아 들이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던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때문에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은 사찰벽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 모래 공양을 올린 아쇼카 왕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와 함께 탁발하러 가시다가 길에서 소꿉장난을 하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모래와 흙으로 집을 만들고 또 신발에다 모래를 담아 밥이라고 얘기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놀고 있던 아이들은 저 멀리 부처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을 떠 올렸습니다.
'부처님께 무엇이든지 공양을 올리면 큰 복을 받는다고 하던데 ....'
이렇게 생각한 아이는 신발에 담아 놓은 모래 밥을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모래 밥을 받으시고는 빙그레 웃으시며 아난에게 건네 주셨습니다.
"아난아, 이 모래로 내 방의 허물진 곳에 바르도록 하여라."
정사로 돌아 온 아난이 말씀대로 방의 허물어진 곳에 바르고 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모래라고는 하나, 어린 두 아이가 환희심으로 보시하였으니,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국왕이 되어 삼보를 받들고 여래를 위하여 팔만사천보탑을 세울 것이다."
그러자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어찌 한 줌 흙의 공덕으로 그와 같이 큰 과보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과거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니 임금과 부하들이 모두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법을 청하여 들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왕은 마음의 문이 열리고 깨닫는 바가 참으로 많았다. 왕은 그 기쁜 마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부처님의 형상을 팔만사천장을 그려 보시하였으며, 그 공덕으로 장차 팔만사천의 탑을 건립할 수 있는 과보를 얻게 되었다. 그때 왕이 바로 오늘 모래를 공양한 소년이니, 다음 생에는 다시 국왕으로 태어나 그 탑을 세울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백여 년 후,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던 인도를 통일하고, 인도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다스린 국왕으로 기록된 아쇼카왕이 있습니다. 바로 아쇼카왕의 전생이 그 소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수 많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하게 깨달았고, 결국 큰 상처를 받은 백성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살피고자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하신 말씀대로 아쇼카왕은 천여 명의 승려로 하여금 경전을 편찬케 하는 결집을 주최했고, 인도 전역에 불탑을 건립하는 한편, 해외 여러 나라에 불교사절단을 파견했습니다.
오늘날 인도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아쇼카왕의 석주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전쟁에 의한 승리보다 자비에 의한 정복이 휠씬 훌륭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