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일지두선 (一指頭禪) - 손가락법문
<금산사- 전북 김제>
노스님이 제자의 손가락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다소 충격적인 그림이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들여다본다.
▮ 스님에게는 자신의 깨우침은 없습니까.
당나라 에서는 나 따라 올 스님은 없다 라며, 불교 경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구지스님은 어느 날,
대중들에 법문 후, 실제(實際)라고 하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비구니스님이 찾아와 부처님의 말씀보다 스님의 깨우침을 묻는 질문에
한 마디도 못하는 수모를 당한 후 지금껏 자기의 법은 하나도 없이 앵무새처럼 경전만 달달 외워 떠들어 왔던 자신을 알아차리게 된다,
하지만, 구지스님은 역시도 당대 최고의 스님이었다.
그는 부족한 자신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재정비하듯 수행 정진에 몰두하여, 결국 참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뒤, 스님은 법문을 들으려는 이들 앞에 조용히 손가락 하나만 세울 뿐, 전처럼 어떤 화려한 말은 없었다.
손가락 하나의 무언의 의미는 이러했다..
‘티끌이 하나 일어나니 모든 대지를 거두어들이고, 꽃 한 송이가 피니 온 세계가 열리는 구나’.
어느 날, 멀리서 사람들이 구지스님에게 법문을 들으려 찾아 왔으나,
마침 스님이 계시지 않아 안타까워하는데, 이 모습에 시중드는 동자가 스승의 법문 모습을 멀리서 보아온 터라 사람들 앞으로 나아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
뒤 늦게 도착해 이 광경을 본 구지스님은 손가락을 처 들고 있는 동자승에 다가가 단칼에 그 손가락을 잘라 버린다.
결국 동자승은 손가락 하나를 잃고 나서야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교훈이다.
축구연습생이 공차기 연습보다 세레머니 연습을 더 하고 있는 꼴처럼 동자승 역시 법의 참뜻을 찾기보다 스승의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 불교는 깨우침의 종교다...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고, 강을 건너는 뗏목과 같아서
달을 찾았으면 더 이상 손가락을 볼 일 없고, 강을 건넜다면 뗏목에서는 내려야 하듯,
경전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고 남들 향해 떠들고 다녀 보아도
깨우치지 못해 자기소리 하나 없는 그런 법문은 아직도 뗏목에 벗어나지 못한 채 농익은 술 찌꺼기 냄새 나 묻어 나오는 악취풍기는 소음에 불과하다.
‘일지두선’에서는 없어진 손가락 하나를 통해
진리는 글로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오게 하는 깨우침의 소리라는 걸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 모아보는 일지두선
:: 관룡사- 경남 창녕
:: 법주사- 충북 보은
:: 선암사- 부산 진구
:: 영화사- 서울 광진
:: 은적사- 대구 남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