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4편 팔살성도 7.8장
- 녹원전법상 鹿苑轉法相
보리수 아래, 정각을 이룬 부처님은 그 곳에서 49일간 진리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마지막 순간 잠시 주저하고 계셨습니다. 과연 누가 이 진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렵게 도달한 이 법은 완벽하며, 최고의 진리이다. 그러나 이 진리는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가 어렵다. 오직 지혜를 갖춘 이라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중생의 근기가 낮으니 과연 누가 알아차릴 수 있을까.'
세상에 진리를 알려준다 한 들, 잘못된 견해에 사로잡혀 있는 중생들은 오히려 진리의 세계를 이해하기는 커녕 나아가 부처님의 법을 비방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 때 하늘의 범천이 부처님 앞으로 나서서 인연있는 중생마저 저버리지 말아달라고 간청을 드렸습니다.
범천이 간곡하게 부탁을 올리자, 자비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셨습니다. 그리고 중생의 근기가 각기 다르니 마치 더러운 연못에서도 연꽃이 피어나듯, 분명 진리을 이해하는 이가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중생을 위해 가르침을 펴기로 결심을 하셨습니다.
'연못에는 여러 종류의 연꽃이 있어 아직 물 속에 잠겨 있는 것도 있고 간신히 수면에 고개를 내 놓고 있는 것도 있다. 또 어떤 것은 수면으로 부터 훨씬 올라와 꽃을 피웠으니, 진흙탕 속에 살면서도 더러움에 불들지 않는구나.'
우선 부처님은 진리를 알아 들을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거 함께 수행했던 다섯 명의 수행자가 떠 올라 천안으로 살펴보니, 그들은 바라나시Varanasi에 있는 '선인들이 머무는 사슴동산, 녹야원(migadāya, 鹿野苑)'에서 여전히 수행 중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이들을 찾아 녹야원으로 떠났습니다.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바라나시의 녹야원으로 가는 여정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밤낮을 쉬지 않고 걸어도 족히 20여 일은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그 길은 인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가뜩이나 수행으로 쇠약해진 몸으로, 오로지 제자를 찾아 맨 발로 떠나신 고단하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고따마가 부처님이 되셨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다섯 수행자는 고따마가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저기 타락한 수행자 고따마가 오고 있다."
"그는 고행을 버리고 여인에게 맛있는 음식이나 받아 먹었다. 그런 자에게 우리가 뭘 기대하겠는가?"
"고따마가 다가와도 우린 그냥 본척 만척 하세나."
다섯 수행자는 서로 그렇게 합의를 보았는데, 멀리서 부터 다가오는 부처님을 가만히 보니 이미 예전에 그들이 알고 있던 고따마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부처님을 바라봤을 때, 온화한 얼굴과 몸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에 도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한 명은 부처님의 발우을 받아 들고, 한 명은 부처님께서 앉으실 자리를 준비했고, 또 다른 이는 발 씻는 물을 떠 왔습니다.
"고따마여, 어서 오십시오. 먼 긴을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자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그대들은 여래如來를 고따마라 부리지 말라. 완전히 깨달은 부처님을 예전의 벗처럼 대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보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너희 생각처럼 타락한 적도 없었고,선정을 잃어버린 적도 없다. 나는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었으며, 죽지 않고 영원히 변함없는 진리를 성취했노라."
그리고 그들에게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드디어 세상을 향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수행자들이여, 두 가지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가 있다. 그것은 눈을 밝게 하고, 지혜를 증장시키며, 번뇌를 떠나 고요함에 머물게 한다. 신통을 이루며, 평등한 깨달음을 얻어 미묘한 열반에 이르게 한다. 수행자들이여,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혜롭고 성스러운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이다."
이어서 사성제 四聖諦, 연기법緣起法등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몇 날 몇 밤에 걸쳐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법을 듣고 맨 처음으로 깨닫는 이는 교진여였습니다.
"교진여는 깨달았다. 교진여는 깨달았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세존께 출가하여 계를 받고자 하나이다."
"오라. 비구여!"
이렇게 하여 다섯 수행자가 최초로 비구스님이 되었고, 모두 아라한阿羅漢의 경지를 성취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고, 오비구五比丘가 법을 들어 깨달음을 이룬 것이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입니다.
녹원은 '녹야원鹿野苑'의 준말이며, 법을 전했다는 의미에서 전법轉法입니다. 법을 전하는 것이 마치 어딘가을 갈 때 수레바퀴 달린 마차를 타고 이동하듯,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진리를 보게 되므로, 이것을 '진리의 수레바퀴 [法輪법륜]를 굴린다'고 말합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 수 많은 중생을 교화하셨고, 다섯 비구에서 시작한 교단은 셀 수 없을 만큼 출가자와 재가자들이 귀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도 전역을 넘어 전 세계로 전파되었으며, 이제 부처님은 모든 중생의 가장 큰 스승으로 섬겨지게 되었습니다.
-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보리수 아래,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시고 어언 45년이 지났습니다. 부처님의 연세도 여든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열반에 들 날도 멀지 않았구나. 나의 가르침 가운데 의심스러운 부분이 남아있는 사람은 미루지 말고 물어라."
갑작스런 말씀에 대중들 사이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새하얀 연꽃을 대중들에게 말없이 들어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어리둥절하며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무슨 연유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여러 제자 가운데 오직 한 사람, 가섭(迦葉, 마하깟사빠 산스크리트어: Mahākāśyapa)존자만이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법을 가섭에게 부촉하니, 그대는 잘 보호하며 널리 전하여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
"아난아, 발우와 가사를 들어라. 베살리로 갈 것이다."
부처님은 늙으신 몸을 이끌고 왕사성의 영축산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길을 정해 강가 강을 건너 밧지족의 수도 베살리에 이르렀습니다. 그해 베살리에는 심한 기근이 찾아 왔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비구들이 한꺼번에 탁발을 다니기가 어려웠습니다.
"비구들이여! 베살리 근처에서 흩어져 지내도록 하라. 뜻이 맞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어울려 이 우기를 이겨내라. 나는 벨루와Beluva마을에 머물며 안거할 것이다."
비구들을 떠나 보낸 뒤 부처님께서는 무더위로 몸이 허약해져 심한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병의 고통을 정진의 힘으로 견뎌냈습니다. 어느 날 병세가 조금 회복되자 거처에서 나오신 부처님은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펴고 쉬고 계셨습니다. 아난은 이런 부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워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부처님의 병환을 지켜보면서 두려움에 앞이 캄캄했습니다. 앞으로 저희들이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씀도 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걱정했습니다."
"어난아, 나는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진리를 다 가르쳤다.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 인색해 본 적도 없다. 아난아, 내 나이 여든이다. 이제 내 삶도 다하고 있구나."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계시지 않으면 저희는 누구를 믿고, 무엇에 의지해야 합니까?"
"아난아,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너 자신에게 의지하여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하여라. 법을 떠나 다른 것에 매달리지 말라."
그리고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살라에 흩어져 있는 제자들을 불러 한 곳에 모이도록 하여라."
며칠 후 흩어져 있던 제자들이 다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모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음을 닦는 네 가지 수행법인 사념처四念處, 수행에 필요한 다섯 가지 힘인 오력五力,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곱가지 분별법인 칠각지七覺支 그리고 깨달음을 향하는 여덟 가지 바른 방법인 팔정도八正道등 '37조도품'이라고 불리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방법을 하나 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여래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고 잘 헤아리고 잘 분별하여, 그에 맞게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세상은 덧없고 무상한 것이다. 나도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대들 스스로 잘 닦아 나아가도록 하라."
제자들은 땅에 쓰러져 통곡하며 울부짖었고, 하늘과 땅이 뒤집힐 듯 대지가 진동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입멸할 때가 가까워온 것입니다. 부처님은 베살리를 떠나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장이 춘다Cunda의 땅에 도착했습니다. 춘다는 부처님 일행을 초대하여 공양을 올렸습니다. 특별히 전단나무에서 나는 귀한 버섯으로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음식을 보시고, "이 버섯요리는 다른 비구들에게 주지 말고, 나머지는 모두 땅에 묻어 버리세요."라고 하셨습니다. 버섯요리가 상한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춘다의 성의를 생각하여 받으신 공양은 혼자 다 드셨습니다. 그리고는 춘다에게 법문을 설해 주셨습니다.
공양과 설법을 마치고 부처님은 춘다의 집을 나섰지만, 몇 걸음을 채 옮기기도 전에 심한 복통이 찾아왔습니다. 고통을 참으며 길을 재촉했지만, 마을을 벗어난 곳에서 자리를 깔고 누우셔야 했습니다.
"아난아, 등이 아프구나. 잠시 쉬어가자."
부처님께서는 행여 이 일로 자책하고 있을 춘다을 염려하여, 아난을 돌려보내 이렇게 말을 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춘다여,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셨을 때 최초로 올린 공양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마지막으로 올린 공양은 그 공덕이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대는 여래에게 마지막으로 공양을 올렸기에 큰 이익을 얻어, 수명이 늘어나고 건강할 것입니다. 그리고 명예와 재물이 늘어나고, 죽어서는 하늘에 태어날 것입니다."
춘다에게 보냈던 아난이 돌아오자, 잠시 휴식을 취하시던 부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꾸시나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 말라족의 땅사라나무 숲에 당도하였습니다. 사라나무 숲에는 때 아닌 꽃들이 만발하였고, 여러 꽃들의 향기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아난아, 저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에 자리를 펴다오."
부처님은 북쪽으로 머리를 두신 채 오른 쪽 옆구리를 바닥에 붙이고 두 발을 포개어 누우셨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삼매에 드셨습니다. 두 그루의 사라나무에서는 어느 순간 꽃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 이 궁핍하고 황량한 벌판에서 열반에 드시려 하십니까? 멸도하시더라도 왕사성이나 베살리 같이 큰 도시에서, 부처님을 기다리는 수 많은 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시옵소서."
"아난아, 이 곳을 작고 궁핍한 숲이라고 말하지 말라. 비록 미천한 집일지라도 법의 왕이 한 번 머물면 또한 영광스럽지 아니하겠느냐?"
"...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다면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합니까?"
"너희 비구들은 걱정하지 말라. 나의 장례는 재가불자 우바새와 우바이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아난아, 말라족에게 가서 전하라. 오늘 밤 여래가 사라나무 숲에서 열반에 들것이라고."
아난존자는 흐느끼며 마을로 갔습니다.
"여래께서 열반에 들려 하시며, 여러분이 부처님을 뵙는 것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이고, 부처님 ... 흑흑흑"
"부처님은 무엇이 그리 급하시어 벌써 멸도에 드시는 것입니까 ..."
말라족 사람들은 커다란 슬픔에 피를 토하며 통곡하였습니다.
"여러분, 슬퍼하지 마십시오. 생겨 난 모든 것은 사라지는 법이라고 부처님께서 늘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연을 얽매여 붙잡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받드시 죽는다고 늘 말씀하셨던 것을 잊으셨습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아난도 울음을 참을 수는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누워계신 처소에는 수 많은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날 밤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된 수밧다가 가르침과 구족계를 받아 지녔습니다. 그리고 수밧다가 물러가자, 부처님께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잠시 후 힘겹게 눈을 뜨시더니 아난을 찾았습니다.
"아난아, 눈물을 거두어라. 오랫동안 너는 나를 위해 애써왔다. 이 세상 누구도 너처럼 여래를 잘 섬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라. 머지않아 너도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침묵을 이어가던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 가르친 법과 율이 너희를 보호하리라. 오늘부터 소소한 계율은 버려도 좋다. 서로가 화합하여 예의와 법도를 잘 따르도록 하라. 비구들아, 모든 것은 변하고 무너진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나는 게으름 없이 열심히 수행했으므로 바른 깨달음을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유훈을 남긴 후, 선정에 든 채 열반에 드셨습니다. 대지가 크게 진동하고, 깜깜한 어둠이 대낮처럼 밝아왔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소식을 듣고 사라나무 숲으로 달려온 사람들은 하루 종일 향과 꽃을 바치고, 흰 천으로 몇 겹의 천막을 만들면서 분주히 그 날을 보냈습니다. 이튿날 '부처님의 유해를 오늘 바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때에 맞지 않다. 하루만 더 준비를 하자'며 전날과 마찬가지로 음악과 춤, 꽃, 향등을 바치며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하루만 하루만 하더니 벌써 6일이나 지나갔습니다.
7일 째가 되어서야 부처님의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그런데, 다비식을 시작하려고 준비된 장작에 불을 붙이려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무에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서서 불을 붙여 보았지만, 마치 물에 젖은 나무인 것 마냥 이내 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즈음, 부처님의 장례가 준비되고 있을 무렵, 부처님의 법을 물려받은 가섭존자와 오백 명의 비구들은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멸도에 드시고 장례를 치른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슬픔에 잠긴 채 부랴 부랴 사라나무 숲으로 달려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무에 불이 붙지 않아 우왕좌왕하던 사이, 뒤늦게 가섭존자와 5백 명의 비구가 도착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존자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아난이여, 부처님을 직접 뵙고 싶습니다."
"안 됩니다. 이미 다비식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아난이여, 부처님께 마지막 예를 갖출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가섭존자님, 곤란합니다 ..."
그 때였습니다. 부처님을 모셨던 황금 관에서 갑자기 부처님께서 두 발을 불쑥 밖으로 내미셨습니다. 가섭은 조용히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조아리고 오른 쪽으로 세 번 돌았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두 발을 다시 관 안으로 거두셨습니다.
그 순간 장작더미에는 저절로 불길이 솟았습니다. 커다란 불길을 뒤로하고 가섭을 비롯한 장로 비구들은 대중을 향해 부처님께 들었던 가르침을 설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불길이 사그라지자 말라족은 부처님의 사리를 잘 수습하였습니다.
얼마 후 인도 전역의 각 국에서 사신들이 당도했습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인도를 지배하는 7대 대국을 대표하여 부처님의 열반을 애도하려고 모인 사절단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우리 모두의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가 탑을 세우고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장례를 주관했던 말라족은 거절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곳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 곳에 탑을 세워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니 사리를 나눠 드릴 수 없습니다."
급기야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모두가 군사를 동원해 힘으로 빼앗아 가겠다며 난리였습니다. 그러자 아사세왕(阿闍世王, 아자따삿뚜 Ajatasattu)의 사신으로 온 도나Dona는 공평하게 여덟 등분으로 나누어, 온 세상에 부처님의 사리탑을 세우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사람이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다고 설득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도나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사리는 모두 여덟 등분으로 나뉘어 졌습니다. 그리고 사리를 분배할 때 사용한 용기들은 도나가 한 곳에 모아 탑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각 국의 사신들과 말라족이 떠났고, 뒤늦게 몰리야족이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모든 사리의 분배가 긑난 터라 사리를 얻지 못하게 되자, 다비 후 남아있는 재들을 긁어 모아서 갖고 돌아가 탑을 세웠습니다. 이로써 모두 열 개의 탑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 룸비니에서 꾸시나라까지 >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하늘 나라 도솔천에서 내려와, 룸비니에서 꾸시나라에 이르기까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여든의 평생을 오로지 중생을 제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탄신일, 출가일, 성도일, 열반일, 이 날을 불교의 4대 명절이라고 부릅니다. 팔상성도에서도 탄신에 해당하는 비람강생상, 출가의 유성출가상, 성도의 수하항마상, 열반에 해당되는 쌍림열반상으로 4대 명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팔상성도는 우리가 아는 부처님의 일대기에서 주요한 내용을 뽑아내어 불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려 낸 그림입니다.
그러나 경전에는 부처님의 수명은 상주불멸常住不滅, 즉 항상 머물러 있으며 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룸비니에서 태어나시고, 꾸시나라의 사라나무 숲에서 멸도에 드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마지막 순간 제자들은 부처님의 급작스런 열반을 맞아 통곡하며 부처님께 간청했습니다.
"여래께서는 무엇이 그리 급하시어 벌써 멸도에 드시려는 것입니까. 부디 저희만 두고 이렇게 가지 마옵소서..."
부처님은 만나면 헤어지는 법이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것이 이치라고 말씀하셨지만, 『법화경』을 통해 보면 사실은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멸도하지 않으면서도, 방편으로 '마땅히 멸도를 취取하리라'고 말하느니라. 만약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무른다면, 덕이 옅은 사람들은 선근을 심지 않아 빈궁하고 하천下賤한 신분이 되더라도 오욕을 탐착하여 갖가지 부질없는 생각들과 그릇된 소견에 빠질 것이다.
또 만약 부처님이 항상 머물러 있어 멸하지 않음을 보게 되면,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고, 싫증내고 게으른 마음을 품어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과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유훈에서처럼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부처님은 항상 머물러 계신다는 것을 보게되면, 자칫 중생들은 너무 안일하고 편안한 생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중생들은 아쉬움이 없기에 힘들게 수행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만나 뵙기 어렵고, 부처님 가르침을 배울 기회 얻기는 더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매 순간 노력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비로소 부처님을 만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오로지 중생을 바르게 제도하기 위한 방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2,600여 년 전 사라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는 모습을 보이셨지만, 부처님의 광명은 지금껏 우리 곁에서 중생을 향해 무한한 대자비를 베풀며 항상 함께 머물러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