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음재일날 불교설화
관음재일날 불교설화
로타리 불자회는 금년말에 전남 해남 대흥사와 달마산 도솔암으로 참배를 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삼재소멸지 대둔산 대흥사 천불전의 천불조성설화와 금란가사의 설화내용을 올려드립니다.
오랜 세월 남도의 깊은 산중에서 수행자들의 발길을 받아온 대흥사에는 지금도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머물게 하는 천불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 천불전에는 단순한 불상 조성의 기록을 넘어, 바다를 건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신비로운 인연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조선 순조 연간, 완호(玩虎) 대사는 당시 이름 높은 선승이었으며 훗날 차 문화와 선풍으로 널리 알려진 초의선사의 스승이기도 하였다.
완호 대사는 1813년, 낡고 허물어진 천불전을 새롭게 중건한 뒤 그 법당을 장엄할 천불 조성의 큰 원력을 세우게 된다.
그는 경주에서 나는 귀한 옥석을 구해 천 개의 불상을 만들도록 하였다.
당시 최고의 솜씨를 지닌 열 명의 조각사가 불상 조성에 참여하였는데, 작은 불상 하나에도 정성과 기도가 담겨야 했기에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조각사들은 맑은 물로 몸을 씻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정을 대었다고 하며, 그렇게 장장 여섯 해에 걸쳐 천 개의 옥불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옥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천불들은 크지는 않았지만 표정마다 자비로움이 어려 있었고, 어떤 이는 그 모습을 보고 “천 개의 부처가 아니라 천 개의 마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완성된 옥불들은 세 척의 배에 나누어 실렸다. 배는 경주를 떠나 울산과 부산 앞바다를 지나 남쪽 끝 해남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당시 사람들은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며 바닷가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순탄하던 항해 도중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갑작스러운 풍랑이 몰아치며 배 한 척이 울산진 앞바다에서 거센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노를 저으며 방향을 돌리려 했지만 거대한 바람과 물결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그 배는 멀리 일본 장기현, 오늘날의 나가사키 지역까지 떠밀려 가게 되었다.
며칠 뒤 바닷가에서 표류한 배를 발견한 일본인들은 배 안에 가득 실린 옥불들을 보고 크게 놀랐다. 햇빛을 받은 불상들은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듯 신비로운 광채를 띠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것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서로 의논하여 이 불상들을 모실 절을 새로 짓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과 승려들의 꿈속에 옥불들이 하나둘 나타나더니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조선국 해남 대둔사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 머물 수 없으니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라.”
한 사람만 그런 꿈을 꾼 것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이 같은 내용의 꿈을 꾸자 모두가 놀라 두려워했고, 결국 불상들을 억지로 붙잡아 둘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마침내 일본인들은 옥불들을 다시 배에 실어 조선으로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훗날 다시 보더라도 그 불상들이 일본에 머물렀던 흔적을 알 수 있도록 불상 밑바닥마다 ‘日’ 자를 새겨 보냈다고 전한다.
그렇게 먼 바다를 돌아온 옥불들은 마침내 대흥사 천불전에 무사히 봉안되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부처도 제 머물 곳을 스스로 찾아간다”고 이야기하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천불전의 옥불들은 영험한 기운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어느 시기부터인가 인근 지역의 신도들이 비슷한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꿈속의 불상들이 나타나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가사를 입혀 다오.”
신기하게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자, 대흥사 신도들은 이를 예사로운 일로 여기지 않았다.
결국 신도들은 정성을 모아 천불의 부처님께 금란가사를 인간문화재 누비장의 작품으로 작은 가사를 지어 입혀 드렸고, 이후부터는 4년마다 한 번씩 새 가사로 갈아 입히는 전통이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4년간 입혔던 헌 가사를 소중히 간직하면 집안의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도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어떤 이들은 천불전의 가사를 보시한 사람이나 입었던 천불전 금란가사를 소장할 매우 귀한 인연의 상징처럼 여기며 공경한다고 한다.
남도의 깊은 산사에 삼재도 스며들지 못하는 대흥사에 자리한 천불전은 오늘도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다시 돌아온 천 개의 옥불은, 인간의 뜻을 넘어선 불연(佛緣)의 신비를 오래도록 들려주고 있다.
그런일이 있고부터 대흥사는 매4년마다 천불전 금란가사를 한벌에 2십만원의 모연을 받았으나 개인별로 받는것이 아니라 100벌을 한단위로 10계좌와 번의한 옷들의 세탁과 액자로 만들 2계좌로 1계좌당 2천만원의 시주자 모연을 접수받기 시작하였으나 그소문을 들은 서울의 재벌들이 다투어 경쟁을 하는 바람에 계좌당 5천만원이 넘어가게 되여서 법상 주지 스님께서는 경인지역의 갑부들보다 지방의 불자들에게도 혜택을 주고자 십여년전에 시행을 하였다.
그러나 경인지역 이외의 지방은 부산과 포항에서 각 1계좌만 신청되여서 법상예하께서는 보명에게 반계좌를 지명하시며 큰소리로 어쩔수 없다는 실소를 하시며 차담을 나누었지요.
지금도 서울 갑부들은 계속하여 복전을 가꾸시니 대를 이어진 부자로 존경받는 불자로 사는가 봅니다.
그런 금란가사를 보명도 반계좌를 오래전에 보시하여 대흥사 천불전 금란가사를 로타리 불자회 회원들에게 액자속에 만들어 증정하여 드렸습니다.
그렇게 천불전의 부처님께서 4년간 입고계셨던 금란가사를 개별로 손빨래로 먼지를 씻어내고 다려서 고급액자에 넣어서 집에 걸어두신다면 그곳이 바로 극락세계 일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