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설산동자 이야기
몸을 던져 진리 구한 설산동자
◇진리를 담은 게송을 듣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나찰에게 주어버리는,
간절하고 지극한 구도심을 표현한 동해 만리사 ‘설산동자 이야기’ 벽화.
수행은 간절하고 지극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공부를 할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되 닭이 알을 품듯, 고양이가 쥐를 잡듯, 배고픈 이가 밥을 생각하듯, 목마른 이가 물을 생각하듯, 젖먹이가 엄마를 생각하듯 하라고 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지극하게 공부에 임하면 생각 생각이 공부에 꽂혀 있고 일체 행동이 공부로 이어진다.
부처님도 그렇게 간절하고 지극하게 공부했다. 처음 출가했을 때는 수많은 현인들을 찾아가 묻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은 궁극적인 만족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명상을 통해 우주적 질서의 핵을 꿰뚫는 경지를 넘어섰다. 생로병사의 일대사를 해결하겠다는 간절함이 없었다면 니련선하 강가에서 새벽별에 눈 맞추고 깨달음을 얻는 그 환희도 없었을 것이다.
경전 가운데 〈자타카〉는 부처님의 전생담을 묶은 것이다. 부처님도 룸비니 동산에 태어나기 전 여러 생을 거치면서 간절하고 지극하게 수행했음을 드러내는 일련의 이야기들이다. 부처님의 성불은 한 순간의 수행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수행의 공덕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동화 같기도 한 〈자타카〉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동해 만리사 3층 대불보전 벽화는 화려하고 선명하다. 〈법화경〉의 일곱 가지 비유를 그림으로 묘사한 벽화가 눈길을 끈다. 그 옆의 한 벽면에 그다지 크지 않게 그려진 벽화는 〈자타카〉에 나오는 ‘설산동자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천태사찰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벽화다. 절벽 위에서 동자가 몸을 던져 뛰어내리고 나찰귀신이 그 몸을 받으려고 하는 장면이다. 〈자타카〉에 나오는 설산동자는 부처님의 전생이다. 동자는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을 했다. 일체의 걸림을 초탈하는 위대한 진리를 얻고자 지극하게 공부를 하는 동자의 귀에 이상한 게송이 들려 왔다.
“모든 것은 덧없이 흘러가니, 태어나 죽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네(諸行無常 是生滅法).”
동자는 귀가 솔깃했다. 뭔가 마음이 열리는 듯했다. 그 게송을 음미해 보니 엄청난 진리를 담은 한 구절의 게송이 아닌가? 동자는 마음이 풍성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으로 완전하지는 않은 게송이었다. 다음 구절이 더 있음이 분명 했다.
한참을 귀 기울여 다음 구절이 들리기를 기다렸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때 나찰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게송은 자신이 읊은 것이라 했다. 당연히 동자는 뒷부분이 더 있을 터이니 더 들려달라고 졸랐다. 나찰귀신이 말했다.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먹을 것[고기]을 주면 더 들려 줄 수 있다.”
동자는 서슴없이 “나를 먹으라”며 자신의 육신을 줄 테니 게송의 뒷부분을 들려 달라고 했다.
“나고 죽는 그 일마저 사라져버리면 거기에 고요한 즐거움이 있네(生滅滅已 寂滅爲樂).”
나머지 게송을 들은 동자는 그 게송을 몇 번이고 외우고 음미하며 열반적정에 들었다. 그리고 절벽위에 올라가 나찰을 향해 육신을 던졌다.
한 소절의 게송을 듣고 열반의 환희를 누림으로써 이미 모든 것을 얻은 동자는 더 이상 몸이라는 물질에 얽매이지 않았다. 물론, 〈자타카〉의 이야기는 해피앤딩이다. 동자가 몸을 던지자 나찰이 제석천으로 변해 동자를 살리고 미래 세상에 반드시 성불할 것임을 칭송한다.
설산동자 이야기는 불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를 간과하는 불자가 많다. 매사에 간절하게 그리고 지극하게 임하면 그것이 기도이고 수행이다. 한 구절의 게송을 듣는 기쁨은 육신보다 귀하다는 것을 쉬 납득할 수 있을까? 공부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공부가 최고의 가치다. 공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기꺼이 던질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