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2편 팔상성도 3.4 상
사찰 벽화이야기 제 2편 팔상성도 2-. 3.4 상
-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스승으로부터 온갖 학문을 모두 익히고, 병법과 무예를 익히며 차츰 전륜성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농경제農耕祭가 열렸습니다.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주요한 행사인 만큼 모든 왕족이 참석했고, 궁에서만 살던 싯다르타도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성 밖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아시따 선인의 말이 항상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정반왕은 싯다르타에게 출가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온갖 좋은 것들로 왕자의 주변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어떠한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천상의 중생들처럼, 오직 즐거운 세상만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나온 싯다르타의 눈에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 없었고, 겨우 바지만 입은 채 쉼 없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파헤쳐진 땅 위로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새들이 날아들어 발버둥 치던 벌레들을 사정멊이 쪼아 먹는 것입니다. 쟁기를 맨 소는 농부의 채찍질로 등짝에 피가 맺혔고, 농부 역시 온통 흙 투성이로 힘겨워 보였습니다.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농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힘든데 쉬었다 하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 삶에 휴식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려면 쉴 틈이 없습니다 ..."
태자는 더 이상 농부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쉬며 잠부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백성들은 귀족의 횡포아래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구나. 이 미물들은 또 서로를 잡아먹고 있구나...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좌)은 석가모니의 팔상을 그린 그림과 존상(尊像)을 봉안한 법당이다. / 석가팔상도 釋加八相圖(우)
머리가 온통 복잡해진 태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왕자는 이 사색을 통해 이때 선정의 첫 번째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나는 눈물과 고통을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사로 잡히지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싯드르타가 보이지 않자 신하들과 함께 찾아다닌던 정반왕은 커다란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깊은 강물과 맑은 하늘처럼 깊고도 고요한 태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하였고, 정반왕은 숙연한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왕자를 더욱 세상과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자의 나이 열하홉이 되었을 때, 야소다라Yasodhara와 혼인을 시켰습니다.
야소다라는 꼴리야족의 공주였습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반왕도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계절마다 지낼 수 있도록 세 곳의 궁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각각의 궁전마다 연못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으며, 온통 호화로운 것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봄이었습니다. 태자가 마부 찬나와 함께 궁전의 동쪽 문을 나섰다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습니다. 거무죽죽한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졌으며,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한 몸으로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참한 모습인가?"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마부 찬나의 대답을 듣고,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지...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흥겨운 봄나들이였지만, 태자는 홀로 숲을 거닐며 생각에 빠진 채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다시 나들이를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남쪽 성문으로 길을 나서는데, 길가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온몸의 종기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괴로움에 신음하며 더군다나 자기가 토해 놓은 오물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를 막고 피하기만 할 뿐 누구하나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괴로운 병이 들었는가?"
"살다보면 누구나 병이 들 수 있고, 병들면 저렇게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저 사람 역시 지난 시절엔 나처럼 건강했을 것이다. 나의 젊고 건강한 이 육체도 영원한 것이 아니구나. 나 또한 누구하나 가까이 오지 않을 중병에 걸릴 수 있으리라. 어찌 저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저버리고,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풍류가락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도 태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들이에서 돌아왔고, 더 이상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반왕은 문득 아시따 선인의 예언이 떠 올라 불안해하며, 앞으로 태자가 성 밖을 나설 때는 미리 길가에 모든 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치워두라고 명했습니다.
하루는 서쪽 성문을 나서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늘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태자의 마음도 덩달아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 내 곁에서 떠나가겠지 ...'
"찬나야. 사람은 모두 죽는구나. 세상엔 온통 고통의 아우성만 들리는구나. 그만 돌아가자."
이제까지 태자가 만난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은 결국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고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깊은 생각 속에서 정반왕이 있는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아바마마,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태자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동안 나는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 주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라."
정반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왕자가 수행자의 삶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삿다르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병들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몸을 주십시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세상에 누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아바마마, 비록 제가 왕자의 신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지만, 결국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얻고 싶습니다."
기어코 아시따 선인이 말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정반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온갖 방법으로 설득했지만, 오히려 태자는 더욱 세상을 멀리한 채 사색에 빠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스물아홉이 되었습니다. 정반왕은 집안에만 머물러 초췌해진 태자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까운 동산으로 나들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차를 탄 싯다르타 일행은 북문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싯다르타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린 듯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맨발에 비록 허름한 옷이지만 당당한 모습이었고, 손에 든 것이라곤 흙으로 빚은 그릇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문이라 합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싯다르타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행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제 2편 팔상성도 2-. 3.4 상
-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스승으로부터 온갖 학문을 모두 익히고, 병법과 무예를 익히며 차츰 전륜성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농경제農耕祭가 열렸습니다.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주요한 행사인 만큼 모든 왕족이 참석했고, 궁에서만 살던 싯다르타도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성 밖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아시따 선인의 말이 항상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정반왕은 싯다르타에게 출가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온갖 좋은 것들로 왕자의 주변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어떠한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천상의 중생들처럼, 오직 즐거운 세상만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나온 싯다르타의 눈에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 없었고, 겨우 바지만 입은 채 쉼 없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파헤쳐진 땅 위로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새들이 날아들어 발버둥 치던 벌레들을 사정멊이 쪼아 먹는 것입니다. 쟁기를 맨 소는 농부의 채찍질로 등짝에 피가 맺혔고, 농부 역시 온통 흙 투성이로 힘겨워 보였습니다.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농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힘든데 쉬었다 하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 삶에 휴식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려면 쉴 틈이 없습니다 ..."
태자는 더 이상 농부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쉬며 잠부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백성들은 귀족의 횡포아래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구나. 이 미물들은 또 서로를 잡아먹고 있구나...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좌)은 석가모니의 팔상을 그린 그림과 존상(尊像)을 봉안한 법당이다. / 석가팔상도 釋加八相圖(우)
머리가 온통 복잡해진 태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왕자는 이 사색을 통해 이때 선정의 첫 번째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나는 눈물과 고통을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사로 잡히지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싯드르타가 보이지 않자 신하들과 함께 찾아다닌던 정반왕은 커다란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깊은 강물과 맑은 하늘처럼 깊고도 고요한 태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하였고, 정반왕은 숙연한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왕자를 더욱 세상과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자의 나이 열하홉이 되었을 때, 야소다라Yasodhara와 혼인을 시켰습니다.
야소다라는 꼴리야족의 공주였습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반왕도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계절마다 지낼 수 있도록 세 곳의 궁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각각의 궁전마다 연못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으며, 온통 호화로운 것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봄이었습니다. 태자가 마부 찬나와 함께 궁전의 동쪽 문을 나섰다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습니다. 거무죽죽한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졌으며,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한 몸으로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참한 모습인가?"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마부 찬나의 대답을 듣고,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지...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흥겨운 봄나들이였지만, 태자는 홀로 숲을 거닐며 생각에 빠진 채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다시 나들이를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남쪽 성문으로 길을 나서는데, 길가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온몸의 종기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괴로움에 신음하며 더군다나 자기가 토해 놓은 오물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를 막고 피하기만 할 뿐 누구하나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괴로운 병이 들었는가?"
"살다보면 누구나 병이 들 수 있고, 병들면 저렇게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저 사람 역시 지난 시절엔 나처럼 건강했을 것이다. 나의 젊고 건강한 이 육체도 영원한 것이 아니구나. 나 또한 누구하나 가까이 오지 않을 중병에 걸릴 수 있으리라. 어찌 저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저버리고,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풍류가락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도 태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들이에서 돌아왔고, 더 이상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반왕은 문득 아시따 선인의 예언이 떠 올라 불안해하며, 앞으로 태자가 성 밖을 나설 때는 미리 길가에 모든 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치워두라고 명했습니다.
하루는 서쪽 성문을 나서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늘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태자의 마음도 덩달아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 내 곁에서 떠나가겠지 ...'
"찬나야. 사람은 모두 죽는구나. 세상엔 온통 고통의 아우성만 들리는구나. 그만 돌아가자."
이제까지 태자가 만난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은 결국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고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깊은 생각 속에서 정반왕이 있는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아바마마,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태자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동안 나는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 주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라."
정반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왕자가 수행자의 삶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삿다르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병들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몸을 주십시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세상에 누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아바마마, 비록 제가 왕자의 신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지만, 결국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얻고 싶습니다."
기어코 아시따 선인이 말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정반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온갖 방법으로 설득했지만, 오히려 태자는 더욱 세상을 멀리한 채 사색에 빠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스물아홉이 되었습니다. 정반왕은 집안에만 머물러 초췌해진 태자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까운 동산으로 나들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차를 탄 싯다르타 일행은 북문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싯다르타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린 듯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맨발에 비록 허름한 옷이지만 당당한 모습이었고, 손에 든 것이라곤 흙으로 빚은 그릇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문이라 합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싯다르타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행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람처럼 걸림없이 다닙니다. 마치 새들이 두 날개만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저도 그저 옷 한 벌과 그릇 하나만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떠돌아 다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고통을 겪고 나니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굴레에서 머문다면 그 슬픔과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안을 얻으려 친족과 벗들의 울타리를 넘어 출가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세상의 욕심에 물들지 않고, 모든 생명을 자비로써 대 합니다. 어떤 고통이 닥치더라도 슬퍼하자 않으며, 어떤 기쁨을 만나도 즐거움에 들뜨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엄히 다스리며 태산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해탈의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습니다."
사문의 대답에 싯다르타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궁으로 돌아 온 때자는 수행자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마침내 그토록 갈구하던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 날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알 수 없는 평온함으로 가득했습니다.
-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사찰 벽화이야기 제 2편 팔상성도 2-. 3.4 상
-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스승으로부터 온갖 학문을 모두 익히고, 병법과 무예를 익히며 차츰 전륜성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농경제農耕祭가 열렸습니다.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주요한 행사인 만큼 모든 왕족이 참석했고, 궁에서만 살던 싯다르타도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성 밖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아시따 선인의 말이 항상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정반왕은 싯다르타에게 출가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온갖 좋은 것들로 왕자의 주변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어떠한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천상의 중생들처럼, 오직 즐거운 세상만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나온 싯다르타의 눈에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 없었고, 겨우 바지만 입은 채 쉼 없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파헤쳐진 땅 위로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새들이 날아들어 발버둥 치던 벌레들을 사정멊이 쪼아 먹는 것입니다. 쟁기를 맨 소는 농부의 채찍질로 등짝에 피가 맺혔고, 농부 역시 온통 흙 투성이로 힘겨워 보였습니다.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농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힘든데 쉬었다 하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 삶에 휴식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려면 쉴 틈이 없습니다 ..."
태자는 더 이상 농부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쉬며 잠부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백성들은 귀족의 횡포아래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구나. 이 미물들은 또 서로를 잡아먹고 있구나...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좌)은 석가모니의 팔상을 그린 그림과 존상(尊像)을 봉안한 법당이다. / 석가팔상도 釋加八相圖(우)
머리가 온통 복잡해진 태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왕자는 이 사색을 통해 이때 선정의 첫 번째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나는 눈물과 고통을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사로 잡히지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싯드르타가 보이지 않자 신하들과 함께 찾아다닌던 정반왕은 커다란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깊은 강물과 맑은 하늘처럼 깊고도 고요한 태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하였고, 정반왕은 숙연한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왕자를 더욱 세상과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자의 나이 열하홉이 되었을 때, 야소다라Yasodhara와 혼인을 시켰습니다.
야소다라는 꼴리야족의 공주였습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반왕도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계절마다 지낼 수 있도록 세 곳의 궁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각각의 궁전마다 연못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으며, 온통 호화로운 것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봄이었습니다. 태자가 마부 찬나와 함께 궁전의 동쪽 문을 나섰다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습니다. 거무죽죽한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졌으며,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한 몸으로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참한 모습인가?"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마부 찬나의 대답을 듣고,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지...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흥겨운 봄나들이였지만, 태자는 홀로 숲을 거닐며 생각에 빠진 채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다시 나들이를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남쪽 성문으로 길을 나서는데, 길가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온몸의 종기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괴로움에 신음하며 더군다나 자기가 토해 놓은 오물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를 막고 피하기만 할 뿐 누구하나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괴로운 병이 들었는가?"
"살다보면 누구나 병이 들 수 있고, 병들면 저렇게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저 사람 역시 지난 시절엔 나처럼 건강했을 것이다. 나의 젊고 건강한 이 육체도 영원한 것이 아니구나. 나 또한 누구하나 가까이 오지 않을 중병에 걸릴 수 있으리라. 어찌 저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저버리고,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풍류가락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도 태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들이에서 돌아왔고, 더 이상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반왕은 문득 아시따 선인의 예언이 떠 올라 불안해하며, 앞으로 태자가 성 밖을 나설 때는 미리 길가에 모든 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치워두라고 명했습니다.
하루는 서쪽 성문을 나서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늘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태자의 마음도 덩달아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 내 곁에서 떠나가겠지 ...'
"찬나야. 사람은 모두 죽는구나. 세상엔 온통 고통의 아우성만 들리는구나. 그만 돌아가자."
이제까지 태자가 만난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은 결국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고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깊은 생각 속에서 정반왕이 있는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아바마마,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태자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동안 나는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 주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라."
정반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왕자가 수행자의 삶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삿다르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병들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몸을 주십시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세상에 누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아바마마, 비록 제가 왕자의 신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지만, 결국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얻고 싶습니다."
기어코 아시따 선인이 말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정반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온갖 방법으로 설득했지만, 오히려 태자는 더욱 세상을 멀리한 채 사색에 빠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스물아홉이 되었습니다. 정반왕은 집안에만 머물러 초췌해진 태자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까운 동산으로 나들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차를 탄 싯다르타 일행은 북문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싯다르타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린 듯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맨발에 비록 허름한 옷이지만 당당한 모습이었고, 손에 든 것이라곤 흙으로 빚은 그릇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문이라 합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싯다르타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행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람처럼 걸림없이 다닙니다. 마치 새들이 두 날개만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저도 그저 옷 한 벌과 그릇 하나만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떠돌아 다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고통을 겪고 나니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굴레에서 머문다면 그 슬픔과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안을 얻으려 친족과 벗들의 울타리를 넘어 출가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세상의 욕심에 물들지 않고, 모든 생명을 자비로써 대 합니다. 어떤 고통이 닥치더라도 슬퍼하자 않으며, 어떤 기쁨을 만나도 즐거움에 들뜨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엄히 다스리며 태산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해탈의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습니다."
사문의 대답에 싯다르타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궁으로 돌아 온 때자는 수행자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마침내 그토록 갈구하던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 날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알 수 없는 평온함으로 가득했습니다.
-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어느 날 깊은 밤, 싯다르타는 잠이 든 마부 찬나를 깨워 말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부인 야소다라와의 사이에서 라훌라를 얻은 지 얼마되지도 않은 때였습니다.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을 때, 싯다르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라훌라Rahula가 태어났구나.' 속박을 얻었구나.'
태자는 수행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지만, 이제 라훌라가 태어나면서 큰 걸림돌을 얻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속박이면서도, 싯다르타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상황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없더라도 왕위를 이어 줄 혈통이 생겼으니, 홀가분하게 출가할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음력 2월 8일, 싯다르타는 부귀와 권력, 일가친척을 모두 버리고 기약할 수 없는 성불의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태자의 출가를 돕기 위해 하늘의 여러 천신들은 궁궐을 지키던 모든 병사를 잠들게 했고, 애마 깐타까는 땅을 박차고 올라 성벽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마부 찬나는 놀란 나머지 말고삐를 놓치고 깐타까의 꼬리만 겨우 잡은 채 힘껏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제 2편 팔상성도 2-. 3.4 상
-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스승으로부터 온갖 학문을 모두 익히고, 병법과 무예를 익히며 차츰 전륜성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농경제農耕祭가 열렸습니다.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주요한 행사인 만큼 모든 왕족이 참석했고, 궁에서만 살던 싯다르타도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성 밖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아시따 선인의 말이 항상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정반왕은 싯다르타에게 출가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온갖 좋은 것들로 왕자의 주변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어떠한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천상의 중생들처럼, 오직 즐거운 세상만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나온 싯다르타의 눈에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 없었고, 겨우 바지만 입은 채 쉼 없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파헤쳐진 땅 위로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새들이 날아들어 발버둥 치던 벌레들을 사정멊이 쪼아 먹는 것입니다. 쟁기를 맨 소는 농부의 채찍질로 등짝에 피가 맺혔고, 농부 역시 온통 흙 투성이로 힘겨워 보였습니다.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농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힘든데 쉬었다 하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 삶에 휴식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려면 쉴 틈이 없습니다 ..."
태자는 더 이상 농부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쉬며 잠부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백성들은 귀족의 횡포아래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구나. 이 미물들은 또 서로를 잡아먹고 있구나...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좌)은 석가모니의 팔상을 그린 그림과 존상(尊像)을 봉안한 법당이다. / 석가팔상도 釋加八相圖(우)
머리가 온통 복잡해진 태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왕자는 이 사색을 통해 이때 선정의 첫 번째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나는 눈물과 고통을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사로 잡히지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싯드르타가 보이지 않자 신하들과 함께 찾아다닌던 정반왕은 커다란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깊은 강물과 맑은 하늘처럼 깊고도 고요한 태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하였고, 정반왕은 숙연한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왕자를 더욱 세상과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자의 나이 열하홉이 되었을 때, 야소다라Yasodhara와 혼인을 시켰습니다.
야소다라는 꼴리야족의 공주였습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반왕도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계절마다 지낼 수 있도록 세 곳의 궁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각각의 궁전마다 연못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으며, 온통 호화로운 것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봄이었습니다. 태자가 마부 찬나와 함께 궁전의 동쪽 문을 나섰다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습니다. 거무죽죽한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졌으며,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한 몸으로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참한 모습인가?"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마부 찬나의 대답을 듣고,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지...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흥겨운 봄나들이였지만, 태자는 홀로 숲을 거닐며 생각에 빠진 채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다시 나들이를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남쪽 성문으로 길을 나서는데, 길가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온몸의 종기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괴로움에 신음하며 더군다나 자기가 토해 놓은 오물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를 막고 피하기만 할 뿐 누구하나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괴로운 병이 들었는가?"
"살다보면 누구나 병이 들 수 있고, 병들면 저렇게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저 사람 역시 지난 시절엔 나처럼 건강했을 것이다. 나의 젊고 건강한 이 육체도 영원한 것이 아니구나. 나 또한 누구하나 가까이 오지 않을 중병에 걸릴 수 있으리라. 어찌 저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저버리고,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풍류가락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도 태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들이에서 돌아왔고, 더 이상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반왕은 문득 아시따 선인의 예언이 떠 올라 불안해하며, 앞으로 태자가 성 밖을 나설 때는 미리 길가에 모든 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치워두라고 명했습니다.
하루는 서쪽 성문을 나서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늘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태자의 마음도 덩달아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 내 곁에서 떠나가겠지 ...'
"찬나야. 사람은 모두 죽는구나. 세상엔 온통 고통의 아우성만 들리는구나. 그만 돌아가자."
이제까지 태자가 만난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은 결국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고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깊은 생각 속에서 정반왕이 있는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아바마마,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태자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동안 나는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 주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라."
정반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왕자가 수행자의 삶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삿다르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병들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몸을 주십시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세상에 누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아바마마, 비록 제가 왕자의 신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지만, 결국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얻고 싶습니다."
기어코 아시따 선인이 말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정반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온갖 방법으로 설득했지만, 오히려 태자는 더욱 세상을 멀리한 채 사색에 빠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스물아홉이 되었습니다. 정반왕은 집안에만 머물러 초췌해진 태자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까운 동산으로 나들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차를 탄 싯다르타 일행은 북문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싯다르타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린 듯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맨발에 비록 허름한 옷이지만 당당한 모습이었고, 손에 든 것이라곤 흙으로 빚은 그릇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문이라 합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싯다르타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행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람처럼 걸림없이 다닙니다. 마치 새들이 두 날개만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저도 그저 옷 한 벌과 그릇 하나만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떠돌아 다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고통을 겪고 나니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굴레에서 머문다면 그 슬픔과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안을 얻으려 친족과 벗들의 울타리를 넘어 출가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세상의 욕심에 물들지 않고, 모든 생명을 자비로써 대 합니다. 어떤 고통이 닥치더라도 슬퍼하자 않으며, 어떤 기쁨을 만나도 즐거움에 들뜨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엄히 다스리며 태산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해탈의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습니다."
사문의 대답에 싯다르타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궁으로 돌아 온 때자는 수행자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마침내 그토록 갈구하던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 날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알 수 없는 평온함으로 가득했습니다.
-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어느 날 깊은 밤, 싯다르타는 잠이 든 마부 찬나를 깨워 말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부인 야소다라와의 사이에서 라훌라를 얻은 지 얼마되지도 않은 때였습니다.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을 때, 싯다르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라훌라Rahula가 태어났구나.' 속박을 얻었구나.'
태자는 수행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지만, 이제 라훌라가 태어나면서 큰 걸림돌을 얻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속박이면서도, 싯다르타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상황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없더라도 왕위를 이어 줄 혈통이 생겼으니, 홀가분하게 출가할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음력 2월 8일, 싯다르타는 부귀와 권력, 일가친척을 모두 버리고 기약할 수 없는 성불의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태자의 출가를 돕기 위해 하늘의 여러 천신들은 궁궐을 지키던 모든 병사를 잠들게 했고, 애마 깐타까는 땅을 박차고 올라 성벽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마부 찬나는 놀란 나머지 말고삐를 놓치고 깐타까의 꼬리만 겨우 잡은 채 힘껏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어야만 하는 삶의 고통,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속에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위 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어머니와 야소다라를 찾지 않으리라.'
성에서 멀리 떠나 강가에 다다르자 멀리서 동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너희들의 할 일은 끝났다. 그 동안 시중드느라 수고 많았다. 그만 깐타까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거라."
하지만 찬나는 태자의 앞을 막아서며 함께 왕궁으로 돌아가자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상투를 찬나에게 줘어 주었습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제 2편 팔상성도 2-. 3.4 상
-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스승으로부터 온갖 학문을 모두 익히고, 병법과 무예를 익히며 차츰 전륜성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농경제農耕祭가 열렸습니다.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주요한 행사인 만큼 모든 왕족이 참석했고, 궁에서만 살던 싯다르타도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성 밖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아시따 선인의 말이 항상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정반왕은 싯다르타에게 출가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온갖 좋은 것들로 왕자의 주변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어떠한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천상의 중생들처럼, 오직 즐거운 세상만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나온 싯다르타의 눈에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 없었고, 겨우 바지만 입은 채 쉼 없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파헤쳐진 땅 위로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새들이 날아들어 발버둥 치던 벌레들을 사정멊이 쪼아 먹는 것입니다. 쟁기를 맨 소는 농부의 채찍질로 등짝에 피가 맺혔고, 농부 역시 온통 흙 투성이로 힘겨워 보였습니다.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농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힘든데 쉬었다 하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 삶에 휴식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려면 쉴 틈이 없습니다 ..."
태자는 더 이상 농부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쉬며 잠부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백성들은 귀족의 횡포아래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구나. 이 미물들은 또 서로를 잡아먹고 있구나...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좌)은 석가모니의 팔상을 그린 그림과 존상(尊像)을 봉안한 법당이다. / 석가팔상도 釋加八相圖(우)
머리가 온통 복잡해진 태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왕자는 이 사색을 통해 이때 선정의 첫 번째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나는 눈물과 고통을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사로 잡히지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싯드르타가 보이지 않자 신하들과 함께 찾아다닌던 정반왕은 커다란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깊은 강물과 맑은 하늘처럼 깊고도 고요한 태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하였고, 정반왕은 숙연한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왕자를 더욱 세상과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자의 나이 열하홉이 되었을 때, 야소다라Yasodhara와 혼인을 시켰습니다.
야소다라는 꼴리야족의 공주였습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반왕도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계절마다 지낼 수 있도록 세 곳의 궁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각각의 궁전마다 연못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으며, 온통 호화로운 것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봄이었습니다. 태자가 마부 찬나와 함께 궁전의 동쪽 문을 나섰다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습니다. 거무죽죽한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졌으며,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한 몸으로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참한 모습인가?"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마부 찬나의 대답을 듣고,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지...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흥겨운 봄나들이였지만, 태자는 홀로 숲을 거닐며 생각에 빠진 채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다시 나들이를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남쪽 성문으로 길을 나서는데, 길가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온몸의 종기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괴로움에 신음하며 더군다나 자기가 토해 놓은 오물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를 막고 피하기만 할 뿐 누구하나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괴로운 병이 들었는가?"
"살다보면 누구나 병이 들 수 있고, 병들면 저렇게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저 사람 역시 지난 시절엔 나처럼 건강했을 것이다. 나의 젊고 건강한 이 육체도 영원한 것이 아니구나. 나 또한 누구하나 가까이 오지 않을 중병에 걸릴 수 있으리라. 어찌 저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저버리고,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풍류가락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도 태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들이에서 돌아왔고, 더 이상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반왕은 문득 아시따 선인의 예언이 떠 올라 불안해하며, 앞으로 태자가 성 밖을 나설 때는 미리 길가에 모든 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치워두라고 명했습니다.
하루는 서쪽 성문을 나서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늘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태자의 마음도 덩달아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 내 곁에서 떠나가겠지 ...'
"찬나야. 사람은 모두 죽는구나. 세상엔 온통 고통의 아우성만 들리는구나. 그만 돌아가자."
이제까지 태자가 만난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은 결국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고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깊은 생각 속에서 정반왕이 있는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아바마마,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태자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동안 나는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 주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라."
정반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왕자가 수행자의 삶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삿다르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병들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몸을 주십시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세상에 누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아바마마, 비록 제가 왕자의 신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지만, 결국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얻고 싶습니다."
기어코 아시따 선인이 말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정반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온갖 방법으로 설득했지만, 오히려 태자는 더욱 세상을 멀리한 채 사색에 빠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스물아홉이 되었습니다. 정반왕은 집안에만 머물러 초췌해진 태자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까운 동산으로 나들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차를 탄 싯다르타 일행은 북문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싯다르타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린 듯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맨발에 비록 허름한 옷이지만 당당한 모습이었고, 손에 든 것이라곤 흙으로 빚은 그릇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문이라 합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싯다르타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행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람처럼 걸림없이 다닙니다. 마치 새들이 두 날개만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저도 그저 옷 한 벌과 그릇 하나만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떠돌아 다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고통을 겪고 나니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굴레에서 머문다면 그 슬픔과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안을 얻으려 친족과 벗들의 울타리를 넘어 출가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세상의 욕심에 물들지 않고, 모든 생명을 자비로써 대 합니다. 어떤 고통이 닥치더라도 슬퍼하자 않으며, 어떤 기쁨을 만나도 즐거움에 들뜨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엄히 다스리며 태산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해탈의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습니다."
사문의 대답에 싯다르타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궁으로 돌아 온 때자는 수행자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마침내 그토록 갈구하던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 날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알 수 없는 평온함으로 가득했습니다.
-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어느 날 깊은 밤, 싯다르타는 잠이 든 마부 찬나를 깨워 말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부인 야소다라와의 사이에서 라훌라를 얻은 지 얼마되지도 않은 때였습니다.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을 때, 싯다르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라훌라Rahula가 태어났구나.' 속박을 얻었구나.'
태자는 수행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지만, 이제 라훌라가 태어나면서 큰 걸림돌을 얻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속박이면서도, 싯다르타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상황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없더라도 왕위를 이어 줄 혈통이 생겼으니, 홀가분하게 출가할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음력 2월 8일, 싯다르타는 부귀와 권력, 일가친척을 모두 버리고 기약할 수 없는 성불의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태자의 출가를 돕기 위해 하늘의 여러 천신들은 궁궐을 지키던 모든 병사를 잠들게 했고, 애마 깐타까는 땅을 박차고 올라 성벽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마부 찬나는 놀란 나머지 말고삐를 놓치고 깐타까의 꼬리만 겨우 잡은 채 힘껏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어야만 하는 삶의 고통,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속에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위 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어머니와 야소다라를 찾지 않으리라.'
성에서 멀리 떠나 강가에 다다르자 멀리서 동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너희들의 할 일은 끝났다. 그 동안 시중드느라 수고 많았다. 그만 깐타까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거라."
하지만 찬나는 태자의 앞을 막아서며 함께 왕궁으로 돌아가자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상투를 찬나에게 줘어 주었습니다.
"나를 대신해 이것들을 부왕께 전해주거라. 내가 나라를 버리고 수행하는 것을 못난 짓이라 너무 나무라지는 마시라고 전해다오. 지금은 생사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훗날 최상의 진리를 얻게 되면 돌아갈 것이라고 잘 전해다오."
"저만 궁으로 돌아가면 벌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왕자님 부디 제가 계속 모시도록 해 주십시오."
슬피 울며 애원하는 찬나에게 싯다르타는 마지막으로 신고 있던 황금신발을 벗어주며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왕비님과 야소다라에게 전해 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더냐, 나를 낳아주신 어머님도 얼굴을 뵙지 못하고 죽음으로 이별했는데, 너와 헤어짐이 없을 수 있겠느냐. 더 이상 부질없는 연민으로 괴로워 말라. 이제 여기서 헤어지자. 궁으로 돌아가 내 말을 잘 전해다오. 너에게 하는 마지막 부탁이다."
마침 지나가는 사냥꾼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화려한 옷과 사냥꾼의 허름한 옷을 바꿔 입고는, 그렇게 싯다르타는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