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무착문희
중국 오대산 중턱의 외딴 암자 금강굴에서 한 스님이 손수 밥을 해먹으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여 무착(無着; 821-900)이라는 법명을 받아 계율과 교학을 공부하다가
문수보살의 영지(靈地) 오대산에 참배하고 문수보살을 친견(親見)하고자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하루는 식량이 떨어져 산 아래 마을에 내려가 양식을 탁발해 올라 오다가
소를 몰고 가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노인의 모습이 범상치 않음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뒤를 따르게 되었다.
한참을 뒤쫓아 가다 보니 전혀 보지 못했던 웅장한 절 한 채가 나타났다.
노인이 문 앞에서 “균제야! ” 하고 부르니 한 동자가 뛰어나와 소고삐를 잡아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따라 들어가 노인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동자가 아주 향기로운 차를 한 잔 내왔다. 노인이 묻기를
-
자네는 오대산에 무엇하러 왔는가?
-
저는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그 가호를 얻고자 찾아왔습니다.
-
자네가 가히 문수를 만날 수 있을까? 자네 살던 절에는 대중은 얼마나 되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
300여명 되는 대중이 경전도 읽고 계율도 익히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어떠한지요?
-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요, 용과 뱀이 뒤섞여 산다네.(龍蛇混雜 凡聖交參)
무착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새 밖은 어두워져서 무착은 노인에게 하룻밤 쉬어갈 것을 청하였더니
- 애착이 남아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자고 갈 수 없네.
하고는 동자에게 배웅하게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어둑해진 길가에 나와서 무착은 동자에게 물었다.
- 아까 노인에게 이곳 대중의 수를 물었더니 전삼삼 후삼삼이라고 하시던데 도대체 무슨 뜻인가?
하고 물으니,
동자가 큰 소리로 무착아! 하고 부르니 엉겁결에
- 네.
하고 대답하자,
-그 수효가 얼마나 되는고?
하며 동자가 다그쳐 묻는 것이었다.
무착은 또 다시 말문이 막혀 동자를 쳐다 보며
-
이 절 이름은 무엇입니까?
-
반야사(般若寺)라고 합니다.
하며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웅장하던 절은 금시에 간 곳이 없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동자도 사라지고 없는데, 허공에서 한 귀절 게송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面上無瞋供養具)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요한 향이로다(口裡無瞋吐妙香)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心裡無瞋是眞寶)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無染無垢是眞常) >
이렇게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서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무착은 더욱 수행에 힘써 앙산 선사(仰山; 840~916)의 법(法)을 이어받아
어디에도 거리낄 바 없는 대자유인이 되었다.
어느 해 겨울, 동짓날이 되어 팥죽을 쑤고 있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죽 속에서 거룩하신 문수보살이 장엄하게 나타나서는
- 무착은 그 동안 무고한가?
하며 옛날 오대산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시키며 먼저 인사말을 건냈다.
그런데 무착스님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팥죽을 젓던 주걱을 들어 문수보살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문수보살은 놀래어
- 어이, 무착 내가 바로 자네가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하던 문수일세 문수야!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받은 무착스님은
-
문수는 문수요, 무착은 무착이다.
만일 문수가 아니라 석가나 미륵이 나타날지라도 내 주걱 맛을 보여주리라.
하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문수보살은
-
쓴 꼬두박은 뿌리까지 쓰고 단 참외는 꼭지까지 달도다.
내 삼대겁(三大劫)을 수행해 오는 동안 오늘에사 괄시를 받아 보는구나.
하는 말을 마치고 슬며시 사라져 버렸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오대산 금강굴에서 3년 간이나 기도를 하고,
또 문수보살을 원불(願佛)로 모시고 다녔던 무착이었건만
깨달음을 성취한 뒤에는 문수보살이 스스로 나타나셨어도
도리어 호령을 하고 주걱으로 얼굴을 갈긴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체득한 선사들의 기백이요 실력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