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국청사의 성인, 한산과 습득
천태산 국청사國淸寺는 수나라 때 천태 지의대사가 세운 사찰로 천태종의 본산입니다. 경내에는 천태대사와 더불어 고려 대각국사 의천조사 그리고 대한불교 천태종 중창조 상월원각대조사의 존상을 모신 「중한천태종조사기념당」이 건립되는 등 한국과 중국불교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는 곳입니다.
당나라 때입니다. 국청사에는 풍간선사와 한산 그리고 습득의 세 성인이 은거해 머물렀다하여 사람들은 국청삼은國淸三隱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모두 불보살의 화신이라고 합니다. 풍간은 아미타불, 한산은 문수보살, 습득은 보현보살의 화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이들의 기이한 행동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산寒山은 국청사 뒤편의 한암이라는 토굴에 살면서 끼니때가 되면 국청사로 내려와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얻어먹었다고 합니다. 옷은 다 떨어지고 커다란 나막신을 신고 다니면서 늘 기이한 행동이 많았는데, 한암에 산다고 해서 그를 한산이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습득拾得이라는 분은 풍간스님이 길에서 주워 온 분이라고 습득이라는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그는 국청사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일을 맡았는데, 사람들이 먹다 남은 밥과 나물이 있으면 모다 두었다가 한산이 찾아오면 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국청사 스님들은 산 아래 목장에서 한산과 습득이 소떼와 놀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한산이 먼저 소떼를 향해 말했습니다.
"도반들아, 소 노릇하는 기분이 어떠한가, 시주 밥을 먹고 놀기만 하더니 기어코 이 모양이 되었구나. 오늘은 여러 도반들과 더불어 법문을 나눌까하여 왔으니, 호명하는 대로 이쪽으로 나오시게. 첫째, 동화사 경진 율사!"
한산이 이렇게 말하자 검은 소 한마리가 '음메 ~'하면서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다음은 천관사 현진법사!"
이번에는 누런 황소가 '음메 ~'하면서 앞으로 나와 절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른 번을 스님들의 이름을 호명하였고, 그때마다 어떤 소가 앞으로 나와 머리 숙여 절을 하더니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수 많은 소떼 가운데 이 서른 마리는 전생에 스님이었는데, 수행을 게을리 한 과보로 축생의 몸으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이를 본 스님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한산과 습득이 그저 미치광이인 줄만 알았더니, 성인의 화신임이 틀림없구나.'
얼마 뒤, 여구윤이라는 관리가 이 고을 원님인 자사刺史로 부임했습니다. 그에게는 평소 지병이 있었는데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이에 풍간스님이 자사를 찾아가 깨끗한 그릇에 물을 받아 자사에게 뿌리니 언제 아팠냐는 듯 말끔하게 병이 낫는 것입니다. 자사가 크게 공양을 올리며 설법해 주기를 청하자 풍간스님은 굳이 마다하면서 말하기를,
"나 보다는 문수, 보현께 물어 보시오."
"두 보살께서는 어디에 계신지요?"
"국청사에서 불을 때고, 그릇을 씻는 한산과 습득이 바로 그들입니다."
자사는 공양물을 준비해 국청사로 한산과 습득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한산과 습득은 개울가에서 개구리와 장난치며 놀고 있는 것입니다. 자사가 다가와 절을 올리자 그 둘은 무턱대고 자사를 꾸짖었습니다.
잠시 후 한산은 자사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해주었습니다.
"풍간께서 실없는 소릴 지껄였군. 자네는 풍간스님이 바로 아미타불인 줄도 모르고 우리를 찾아오면 뭘 어쩌겠나?"
그리고는 둘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구윤은 못내 아쉬워 한암굴로 급히 쫓아가 법을 청했습니다.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각자 노력하여 얻으라."
한산과 습득이 이 말만 남기고 굴속으로 들어가자 입구의 돌문이 저절로 닫혀버렸습니다. 결국 여구윤은 성인을 친견하고도 깊은 법문을 듣지 못한 것을 서운하게 여겨 풍간선사, 한산과 습득이 평소 동굴주변, 숲 속 마뭇잎이나 석벽, 혹은 국청사 구석구석에 써놓은 세 분의 시 약 350수를 모아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 책이 한산시집寒山詩集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지는데, 선화禪畵의 소재로도 자주 인용되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홀연한 마음으로 편히 앉아 쉬노라면 해 저무니 나무그림자 덩달아 낮아지네.
스스로의 마음자리 자세히 보노라면 진흙탕 가라앉고 연꽃 한 송이 피어나네."> ☞ 한산寒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