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은혜를 갚은 꿩
강원도 원주에 있는 치악산은 뱀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옛날 치악산에는 상원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에서 수행하던 한 스님이 어느 날 법당 뒤로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큰 구렁이 한 마리를 목격했습니다.
구렁이는 독기를 뿜으며 꿩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스님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구렁이를 건드려 쫒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구렁이한테 놀라 날지도 못하는 꿩을 보듬어 멀리 날아가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스님이 홀로 참선을 하는 방문을 누군가 두드리는 것입니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거기에 백발의 한 노인이 서 있는 것입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야심한 밤에 길을 잃으셨나 보군요."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오. 배가 고파서 들어 온 것 뿐이오."
"그럼 내 공양을 좀 준비해 드리리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스님이 후원으로 나가려 하자, 노인이 팔을 제지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밥을 먹지 못하오. 살아 있는 것을 먹소. 죽은 고기도 안 먹소."
노인의 말에 스님이 깜짝 놀라 되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죽은 고기와 밥을 드시지 않고, 산고기만 드신다니요."
"나는 구렁이올시다. 오늘 낮에 꿩 한 마리를 잡아먹으려 했는데,
스님이 방해를 해서 놓쳐버리고 이제껏 굶었소.
그러니 대신 스님을 잡아먹어야겠소."
"아니 노인장께서 구렁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잡아먹는 것은 나중이고, 우선 노인장이
어째서 구렁이인지 그 사연이나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정색하던 노인이 이윽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전생에 이곳 상원사에서 주지로 있었소.
한 때, 불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범종을 만들기로 했소.
시주들에게 화주를 했지요. 그렇게해서 꽤나 많은 불사금이 모였소.
그런데 나는 그 돈을 다른 곳에 쓰고 범종 만드는데는 조금밖에 쓰질 않았소.
그랬더니 종소리가 영 나질 않게 되었소.
난 그런 죄로 그만 죽어서는 구렁이의 몸으로 태어나고 말았소이다.
나의 죄업은 한 없이 크다는 것을 알았소.
하지만 지금의 나는 구렁이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니 산고기를 잡아먹어야만 하오."
"듣고 보니 참 딱하십니다. 내가 먹이를 뺏은 것은 잘못한 일이니 한 번 만 봐 주십시오."
그러나 노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그 일은 그 일이고 지금 배고픔을 참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스님이 애원하며 매달리자, 노인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좋습니다. 스님께서 정 그러하다면 내게 한 가지 제안이 있소.
이 상원사 법당 뒤에 가면 내가 전생에 잘못 주조하여 소리가 나지 않는 종이 있소.
만일 내일 새벽까지 그 종을 울려 소리를 나게 하면,
나는 구렁이의 몸을 벗고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가 있소.
그때는 나도 열심히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겠소이다."
과연 법당 뒤에는 종이 높다랗게 달려 있었습니다.
게다가 워낙 높은 곳에 달려 있어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종을 울릴 수가 없는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높은 곳에 달아맨 범종이기에 이 절에 그토록 오래 있으면서도
그런 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내왔던 것입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선방으로 돌아와
새벽이 되기까지 마지막으로 수행이나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노인도 옆에서 새벽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침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새벽이 밝아왔습니다.
노인이 구렁이로 변하여 스님을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바로 그때 밖에서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스님이 듣기에 그처럼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종소리는 처음이었습니다.
스님을 잡아먹으려던 구렁이는 다시 노인으로 변하여 스님에게 큰 절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내, 저 종소리를 듣고 구렁이 몸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날이 밝거든 나의 시신을 거두어 화장해 주십시오. 나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내 몸은 남쪽 처마 아래 땅 속에 있습니다."
노인은 말을 마치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날이 밝자 스님은 종이 달려있는 법당 뒤로 가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두 마리 꿩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지난날 구해 준 그 녀석들이었습니다.
꿩은 자기의 생명을 살려 준 은혜를 목숨을 바쳐 갚은 것입니다.
"미물이라도 은혜를 갚을 줄 아는데
사람으로서 어찌 저 꿩만도 못할 것이랴. 참으로 장한 일이로다."
스님은 꿩을 거두어 양지 바른 곳에 잘 묻어 주었고,
노인이 일러준 것처럼 남쪽 처마 아래 땅을 파 죽은 구렁이 한 마리도 잘 거두어 화장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 산 이름을 '꿩 치雉'자와 '큰산 악嶽'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