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백락천과 조과선사
“욕망 사로잡혀 있는 그대가 더 위험하다”
▲ 구미 금룡사에 있는 도림선사와 백낙천이 만나는 벽화.
아침 햇살과 처마 그늘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경지를 구분해 주는 듯 하다.
구미 금룡사는 금오산 정상을 바라보는 산자락에 있습니다.
경사진 길을 올라 진입로 끝에 이르면 관음보전의 오른쪽 측면에 여러 장면의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 중 눈길을 사로잡는 벽화는 한 스님이 나무 위 새둥지에 앉아 참선을 하고
그 아래 관복을 입은 관료가 서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이 벽화는 조과 도림(鳥道臨 741846)선사와 백낙천(白樂天 772846)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당나라의 백락천은 유명한 시인이요, 뛰어난 경륜을 지닌 정치가로 본명은 거이(居易)입니다.
그에 대한 일화는 많지만 조과도림 선사와의 만남은 그를 불교의 세계로 인도한 계기가 됐습니다.
도림선사는 항주(抗州) 출신으로 9세 때 출가하여 도흠선사(道欽禪師) 등으로부터 심요를 전수받았습니다.
스님은 늘 나무 위에 올라가 참선을 했는데 그 옆에는 까치가 둥치를 틀고 살기도 했다고 하여
작소선사(鵲巢禪師)라고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등록〉 등에 전합니다.
백낙천이 도림선사를 만난 것은 당대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고
항주 지역 자사(刺史)의 지위에 올라 자못 우월감에 충만해 있던 때였습니다.
그는 고승으로 이름이 높다는 도림선사를 찾아 갔습니다. 속설에는 백낙천이 도림선사의 도력을 시험해보려고 찾아간 것이라 하지만, 아마 관내(官內)의 훌륭한 종교지도자를 참예하는 것이 하나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백락천이 도림선사가 거처하는 절에 이르렀을 때, 역시 도림선사는 나무 위에 올라앉아 참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 너무 위태롭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가 더 위험 하오.”
“저야 땅에 서 있고 벼슬도 자사에 이르렀는데 무엇이 위험하겠습니까?”
“티끌 같은 세상 지식으로 교만한 마음만 늘어 번뇌가 끝이 없고, 탐욕의 불길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은가?”
선사의 어조는 차분했으나 백락천에게는 벽력같은 소리였습니다. 물질의 세계, 유한의 상념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에게 마음의 불길이 타고 있음을 일러주는 도림선사의 법문에 옷깃을 다잡은 백낙천이 다시 여쭙습니다.
“제가 평생에 좌우명을 삼을 만한 법문 한 구절을 듣고 싶습니다.”
“나쁜 짓 하지 말고(諸惡莫作)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衆善奉行).”
“그거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지. 세 살 먹은 애들도 아는 얘기지. 하지만 여든 살 된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오?”
대화는 더 이상 진행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백낙천은 자신의 오만과 인간의 통속적인 지식의 허망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에서 우리가 챙겨 보아야 할 키워드는 3가지입니다.
먼저 마음의 불길로 인해 인생이 위험하다는 도림선사의 충고입니다. 〈법화경〉에서도 중생계를 불타는 집[火宅]으로 비유하고 있듯이 우리의 몸도 어리석음과 욕망과 분노의 불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마음의 불길을 잡지 못하면 나뭇가지에 올라앉은 것보다 위태로운 삶이라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마음의 불길을 잡느냐? “나쁜 짓 하지 말고(諸惡莫作)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衆善奉行)”는 칠불통게가 정답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칠불통게는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義) 시제불교(是諸佛敎)’의 네 구절입니다. 일체 악을 그치고 선을 받들어 행하여 마음을 밝히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요, 부처에 이르는 길입니다.
도림 선사의 짧은 대답은 구차한 알음알이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낙천은 다시 덧에 걸립니다. ‘그거야 애들도 아는 얘기가 아니냐’고 빈정대는 것이지요. 아직도 도림선사의 간절하고 자상한 가르침의 핵심을 못 본 것입니다.
결국 “그러나 여든 살 노인도 실천하기 어렵다”는 소리까지 듣고서야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도가 어떤 것인가를 깨치게 됩니다. 그 후 백낙천은 돈독한 불교신자가 되어 만년에는 자신의 집을 절로 바꾸며 생활과 수행을 일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생활불교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아는 선(善)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닌 온 몸으로 살아가는 불자가 진짜 불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