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말이 아닌 지혜로 논의, 가전연존자
스스로 알고 깨닫는 일과 자기가 알고 깨달은 바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더라도,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에는 논리정연한 말주변이 요구됩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토론에 있어서는 가전연이 으뜸이었습니다.
가전연은 명망 높고 부유한 바라문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학자로 국왕의 스승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집안은 대단한 권세가였습니다. 어릴 때 부터 총명했던 그는 자신이 배운 학문을 사람들 앞에서 곧잘 강연하였고, 모두 그의 언변에 탄복할 지경이었습니다.
가전연의 부모는 뛰어난 그의 자질을 연마하여 더 많은 학문을 연구할 수 있도록 외삼촌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의 외삼촌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장래를 예언했던 아시따 선인이었습니다. 뛰어난 스승 아래에서 그의 학문은 더욱 높아졌고, 논사論師로서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고 논쟁하기를 즐겼습니다.
아시따 선인의 제자라는 사실과 국사國師였던 아버지, 그리고 대부호라는 그의 배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가전연 또한 자신을 추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뛰어나다고 믿게 되었고, 서서히 그의 자만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과거 아시따 선인은 마야왕비 품에 안긴 싯다르타의 관상을 보았을 때 장차 자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전연에게 자기가 죽으면 자기 대신 부처님에게서 배우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던 가전연이었기에, 그의 교만함은 스승의 유언도 잊어버린 채 현실의 만족에 빠져 하루 하루 지내고 있었습니다.
가전연의 명성이 더욱 높아질 때였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바라나시에 오래된 비석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비석에 적혀있는 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라나시의 왕은 아시따 선인의 제자인 가전연을 불러오라 명하여, 비석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왕 가운데 왕은 누구며, 성인 가운데 성인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어리석고,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가? 어떻게 해야 더러운 때를 벗고 열반에 이르는가? 누가 생사의 바다를 헤매며, 누가 해탈의 바다에서 노니는가?"
고대의 문자에도 능통했던 가전연이었기에 비문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왕은 가전연의 능력에 감탄하며, 그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가전연은 문자를 읽기는 하였으나,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자존심이 구긴 그는 비문의 내용을 유명하다는 학자와 선인들을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스승이 남긴 유언이 떠오는 가전연은 곧장 부처님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부처님은 가전연이 갖고 온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왕 가운데 왕은 하늘의 왕이며, 성인 가운데 성인은 부처라네. 무명에 물든 사람은 어리석고, 번뇌를 벗어나야 지혜롭다네. 탐진치貪瞋癡:탐욕(욕심), 진에(성냄),우치(어리석음)가 더러운 때이니, 계정혜戒定慧를 이루면 열반에 이른다네. 내 것이란 생각에 집착하면 생사의 바다에서 헤매게 되며, 연기의 진리를 깨달으면 해탈의 바다에서 노닐게 되네."
부처님의 대답을 들은 가전연은 자신의 자만심을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스승에게서 배운 적 없던 진리의 말씀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가전연이 마음을 고쳐먹은 것을 아시고 더 많은 가르침을 전해주었고, 가전연은 부처님께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출가한 가전연은 비석의 내용을 국왕에게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최상의 진리를 만나 이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도 전해주면서, 국왕에게 여러 가지 법문을 들려주었습니다. 가전연의 설법을 들은 바라나시의 국왕도 그의 법문에 감화되어 불교에 귀의하였고, 이로써 불교가 더욱 널리 퍼지는 계기가 만들어 졌습니다.
대한불교 천태종 백양산 삼광사 三光寺 (좌)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 소재 / 삼광사내 지관전 止觀殿 (우)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는 가전연의 논리 정연한 언변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공양시간에 나이 많은 장로 한 사람이 찾아와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부처님의 인정을 받는 젊은 가전연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던 그는, 논리로는 안 되기에 나이로 윽박지를 작정이었습니다. 이를 눈치 챈 가전연이 일부러 모른 척하며 공양 준비에만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나이 많은 장로가 와서 서 있으면, 냉큼 자리를 양보할 것이지 어찌 모른 척 하고 있단 말인가?"
당황한 스님들은 그 나이 많은 비구에게 자리를 권하는데, 그때 가전연이 이들을 막고 나섰습니다.
"누구시기에 이곳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호통을 치십니까? 더구나 우리는 이미 공양하기 위해 준비 중인데 다짜고짜 자리를 비우라고 화를 내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나이 많은 스님은 가전연을 향해 더욱 큰 소리로 쏘아 붙였습니다.
"나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니 장로이며, 젊은 그대들이 공경하고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째서 나를 안중에 두지 않는가?"
그러자 가전연이 말했습니다.
"스님의 거친 행동과 말투를 보니 결코 대접받을 만한 장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칭 장로라고 하지만, 너무도 부끄러운 행동을 일삼고 있군요. 아무리 나이가 들고 백발에 이가 다 빠진 노인이 되더라도, 참다운 수행자라면 못된 성미를 부리거나 남을 괴롭히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아무리 젊고 새파란 청년이어도 애욕과 탐욕을 여의고,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이면 그를 장로라 부르며 존경합니다. 당신처럼 스스로 장로라 우기며 거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존경하지 않습니다."
가전연이 말을 마치자 주변의 젊은 비구들은 가전연을 향해 '하하하. 가전연 장로님 ~'이라며 자기들끼리 부르더니, 웃음을 띤 얼굴로 공양 준비를 계속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늙은 비구는 상기된 얼굴로 조용히 뒤돌아 가버렸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학문과 덕이 높고 사려가 깊은 사람은 스스로를 낮추어 행동합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나이가 많아도 상대를 이기려는 마음으로 행동한다면 진정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가전연이 논의제일論議第一이었던 것은 한 때의 자만심을 깊이 뉘우쳐 부처님의 제자가 된 후에는 늘 겸손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오히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배려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했었기에 누구와의 논쟁에서도 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