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벽화이야기 - 구품상생도
극락정토 향한 간절함 담겨
경북 풍기 연풍사는 웅장한 소백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전쟁이 나도 그 화(禍)가 미치지 않는다는 십승지(十勝地)의 한 곳인 금계동으로 가는 길목이다. 연풍사 법당은 2004년에 낙성한 단층 슬래브 건물이다. 법당은 244㎡(74평) 규모인데 중앙 불단의 맞은편 벽에 ‘구품상생도(九品上生圖)’가 화려한 색채로 빛을 뿜고 있다. 이 벽화는 연풍사 뿐 아니라 구인사를 비롯한 여러 천태사찰에 그려져 있다.
화면의 하단과 중앙부 거의 전체에 아름다운 연꽃이 만개해 있고 그 꽃마다 사람이 앉아 있다. 얼핏 보면 여러 사람이 연꽃을 방석삼아 앉아 있는 모양이다. 허리를 곧게 펴고 두 팔을 양쪽 무릎위에 단정이 올려놓은 모습이 통일되어 있다. 그들이 앉은 방향도 일정하여 모두 몸이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커다란 선방에서 연꽃 방석에 올라 앉아 참선을 하는 모습이다.
사람들의 위쪽은 뭉글뭉글 구름이 떠 있고 오른쪽에는 구름이 드리워 있는데 삼층의 궁전 같은 건물이 일부만 살짝 보인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들의 눈이 그 궁전을 향해 있고 표정은 그 궁전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도대체 무슨 광경일까?
이 벽화의 이름이 ‘구품상생도’라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구품이란 아홉 가지의 단계다. 정토3부경의 하나인 〈관무량수경〉에서 극락을 아홉 가지의 등급으로 설명하는데 최하위인 하품하생부터 최상위인 상품상생까지의 단계다. 이들 단계를 거쳐 극락정토로 왕생하는 과정이 ‘구품연화’로 묘사되는데, 각 단계마다 왕생의 매개로 연꽃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조형이나 회화에서 연꽃은 깨달음의 완성을 의미하는 상징체계다.
▲ 풍기 연풍사 법당 안에 그려진 '구품상생도'. 깨달음의 완성을 상징하는 연꽃을 통해 정토에 왕생하는 모습이다.
경전에는 그 품계별 왕생의 시간도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품하생에서 상품상생까지 이르는 시간을 12겁이라 설명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시간 개념으로 계산하면 2억157만 6000년이다. 그러나 그 수치적인 개념의 시간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얼마나 지극한 마음으로 얼마나 밝게 마음을 쓰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 보자. 이제 한쪽 귀퉁이만 보이는 궁전 같은 건물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다음 품계다. 지금 연화대에 앉은 중생들이 하품하생의 단계라면 그 건물은 다음 단계인 하품중생일 것이다. 그래서 연꽃 위에 가지런히 앉아 지성으로 기도를 하는 모습이 그림의 전체적인 내용이고, 극락왕생의 과정이 그림이 주는 메시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락정토에 차별이 있다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방편’이다. 〈관무량수경〉이 제시하는 16가지 관법 즉 ‘16관법’이 수행을 해 나아가는 방편이듯 구품연화의 정토왕생도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제시된 방편인 것이다. 하품하생의 품계보다는 상품상생의 품계로 왕생하려면 더 철저한 수행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한다. 그러한 발원은 진심어린 수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품왕생도’는 바로 그 수행의 실상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타인이 왕생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왕생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정토신앙은 그 뿌리가 깊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연화화생도가 그려져 있다. 평안남도 남포의 고구려고분 ‘성총(星塚)’은 그 천정에 별자리들이 그려져 있어 성총이라 불리는데, 그 무덤의 북쪽 벽에 연꽃 위로 사람이 그려진 도상이 있다. 이른바 연화화생(蓮花化生)이다. 그래서 ‘구품상생도’를 ‘연화화생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천 1호분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보이는데, 이에 대한 불교적 해석은 학술적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극락왕생이라는 이 지극한 염원, 그 성취의 열쇠는 무엇인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현생을 잘 살면 내생도 복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에 최선을 다하고, 여기를 복전(福田)으로 가꾸는 것이 현생과 내생을 상품상생의 정토로 구현하는 길이다.
천태사찰에 ‘구품상생도’가 벽화로 그려진 까닭도 바로 지금 여기를 상품상생의 연화대로 가꾸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